▽“청탁과 찬조금 요구”〓엄 전이사장은 “시의원들이 외유를 떠나거나 야유회, 세미나 때마다 안내문을 시 산하기관에 보내 암묵적으로 찬조금을 요구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산하기관에 알아보니 ‘찬조금을 요구하는 것이니 20만∼30만원 정도 보내주면 된다’는 얘기를 듣고 매번 이 같은 액수의 ‘찬조금’을 보내줬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찬조금 요구는 ‘현금 처리’가 쉽지 않은 본청보다는 상대적으로 현금 확보가 쉬운 시 산하기관과 사업소 등을 상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엄 전이사장은 브로커의 부탁을 받고 보증 압력을 행사한 이모 의원을 비롯해 재단에 상습적으로 보증 청탁을 해온 서울시의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의원Y모 의원 등 4명을 조사해 달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우송했다. 재단측은 시의원의 청탁으로 보증을 서준 N기업이 부도를 내 1억 3000만원의 부실채권이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진정서에는 일부 의원들이 커미션을 받고 보증을 알선해 온 브로커와 관련됐다는 의혹과 함께 이들 의원의 명단이 들어 있다.
엄 전이사장은 “의원들이 실무자들에게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집요하게 대출 독촉을 하는 등 ‘부탁’ 차원을 넘어 ‘압력’을 행사했다”면서 “비협조적일 경우에는 과도한 자료를 요구하거나 의회에 출석시켜 장시간 대기하도록 하는 ‘벌서기’를 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입장〓시의회는 지난달 30일 서울신용보증재단에 대해 39가지 항목에 걸쳐 3개월 간의 행정사무조사를 요구했으며 이를 거부한 엄 전이사장의 해임을 시에 요구했다.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기 위해 설립한 재단의 보증실적이 떨어지는 등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되지 못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 그러나 이들이 요구한 자료목록에는 재단이사장의 공채 기준과 채점 기록, 재산등록 사본, 연봉 산정명세와 기준 등 재단의 보증업무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어 엄 전이사장측은 ‘보복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양경숙(梁敬淑) 재정경제위원장은 “몇몇 의원이 지역구민의 민원해결 차원에서 부탁 전화를 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재단의 보증 실적이 저조한데다 보증절차가 까다롭고 불친절하다는 민원이 많아 행정사무조사를 요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양위원장은 또 “외유나 야유회 등을 포함해 의회의 모든 공식일정을 시와 산하기관에 보내는 것이 관례이며 금품을 요구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입장〓서울시는 20일 시의회의 행정 사무조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잔여 임기를 1년이나 남긴 엄씨를 해임했다. 시 관계자는 “시장이 직접 나서 행정사무조사를 받을 것을 권고했으나 엄 전이사장이 법적 근거가 없는 조사를 받을 수 없다고 버텼다”며 “재단 이사 6명 중 5명의 찬성으로 해임을 결정한 만큼 법적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 주변에서는 서울시가 의회와의 관계악화 등을 우려해 그를 해임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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