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헤게모니

  • 입력 2001년 6월 26일 18시 42분


1926년 11월 이탈리아 공산당 창립자이자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구속됐을 때 검찰관은 “우리는 이 두뇌를 20년 동안 작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무솔리니의 요구였고 그람시는 그 요구대로 징역 20년 4개월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무솔리니 정권은 그람시의 육신은 작동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었지만 그의 정신마저 붙들어 맬 수는 없었다. 1937년 4월 숨지기까지 10년 세월 동안 그람시는 옥중에서 무려 3000쪽에 이르는 ‘옥중 수고(Prison Notebook)’를 집필했다.

▷러시아에 있던 아내 대신 옥바라지를 하던 처형이 들여보내주는 몇 권의 책과 지극히 제한된 일부 자료 외에는 접할 수 없던 감옥 안에서 그람시가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의 유산이자 파시즘에 저항하는 기념비적 저작을 남긴 것은 후대 연구자들에게 여전히 ‘경이(警異)’로 인식된다. 대부분 완결되지 못한 초고와 메모 등으로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그람시의 ‘옥중 수고’는 그의 옥중 서신을 묶은 ‘감옥에서 보낸 편지’와 함께 아직도 정치철학과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20세기의 위대한 저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후(死後) 30년이나 지나서야 세계에 널리 알려진 그람시 사상의 핵심은 ‘헤게모니 이론’. 즉 민중의 자발적 동의와 강제력의 지배가 균형을 이룰 때만이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람시는 ‘혁명전략’으로서의 헤게모니를 말한 것이겠으나 그것이 사상과 시대, 국가권력이나 시민사회를 초월해 주목되는 것은 ‘지적이고 도덕적인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리더십’에 대한 통찰에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강제적 지배의 독재에서 자발적 동의에 기초한 민주화로 진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과연 한 시대의 헤게모니를 유지할 만한 ‘도덕적 리더십’은 존재하는가. 명분을 앞세운 정치적 계산과 권력을 배경으로 한 술수, 편가르기식 분열과 반목으로 헤게모니를 유지해 나갈 수 있겠는가. ‘아니오’라고 답할 수밖에.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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