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E&B클럽]'유치원 학교 부적응 치유' 좌담

  • 입력 2001년 6월 26일 18시 47분


왼쪽부터 손미선, 최정숙, 이지영, 추은영, 김유진씨
왼쪽부터 손미선, 최정숙, 이지영, 추은영, 김유진씨
《재야(在野)의 교육고수(高手) 모임인 ‘동아일보 주부 E&B(Education & Breeding)클럽’이 25일 두 번째 좌담을 가졌다.

이번 주제는 아이들과 학부모의 영원한 숙제인 ‘적응’. 놀이방 유치원 학원 학교 등 낯선 환경에 어떻게 해야 제대로 ‘연착륙’할 수 있는지…. 주부 E&B 클럽 회원 김유진 손미선 이지영 최정숙 추은영씨(가나다 순)는 이날 동아일보사 10층 일민라운지에 앉자마자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4월 첫 상견례를 하고 5월 1차 좌담에 이은 세 번째 만남. 참석자들은 스스럼없이 어려움을 털어놓고 서로 ‘상담’을 받기도 했다. 연장자인 최정숙씨가 사회를 맡았다.》

▽최정숙〓오늘은 아이들의 ‘적응’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유치원 학원 초등학교에 새로 들어갈 때는 물론이고 중간에 이사라도 가면 적응하는데 꽤 애를 먹지요. 전 산전수전 다 겪고 큰애가 대학생, 둘째가 고3이라 이제 한시름 놨지만….

▽김유진〓세 살짜리 딸애가 1주일에 두 번 영어유치원에 다니는데 다행히 큰 문제가 없어요. 보내기 전에는 ‘이 녀석이 엄마하고 처음 떨어지는 건데 어떨까’하고 걱정도 많았는데 정작 너무 잘 놀아서 ‘배신감’마저 느낄 정도예요.

▽손미선〓우리 작은애(4)는 어린이집에 보낼 때마다 울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한달이나 고생했어요. 지금은 오전반이라 점심식사 후 곧 집에 돌아오지만 앞으로 종일반에 가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친구들이 집에 가고 혼자 남으면 소외감을 느낀다던데….

▽추은영〓(한숨을 쉬며)그 정도면 행복한 편이에요. 우리 아들은 정말 문제였어요. 하도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해서 유치원 교실에 들여보내고 문 밖에서 지켜봐야 했어요. 1주일을 그랬더니 제가 지쳐서 병이 나더라고요. 겨우 적응할 만하니까 강남으로 이사했지요. 선생님과 다른 학부모들의 양해를 얻어 다시 한달을 같이 수업을 받았어요. 그래도 아직까지 아침마다 ‘배 아프다, 머리 아프다’며 ‘꾀’를 부려요.

▽모두들〓맞아요. 어린아이들이 어쩌면 그렇게 꾀가 많은지 모르겠어요.

▽이지영〓저는 예전에 어린이집에서 일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유심히 관찰했는데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들은 비교적 적응을 잘 하는 것 같았어요. 줄곧 할머니가 키웠던 한 아이는 한 학기 동안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갔죠.

▽김〓아이들은 가방을 메고 어딘가에 혼자 간다는 자체가 ‘모험’인가 봐요. 혼자 남으면 불안해하는 것 있잖아요. 한번은 좀 늦게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손〓하기야 저도 어렸을 때 집에 계시던 어머니가 다시 직장에 나가게 되자 엄마를 뺏겼다는 생각에 몇날 며칠을 울고불고 난리를 친 기억이 있어요. 요즘에는 직장에 나가는 엄마들이 크게 늘었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스럽네요.▽최〓또래보다 일찍 학교에 보내는 것도 신중해야 해요. 큰애가 태어났을 때 한 살이라도 일찍 학교에 보내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생일을 며칠 앞당겨 2월생으로 만들어줬죠. 그게 다 부모 욕심이더라고요. 적응하는데 1년이나 걸렸어요. 교실에 앉혀놓고 운동장에서 비상대기한 적도 많았다니까요.

▽추〓우리 아인 12월생이라 같은 여섯살이라도 좀 늦은 편이에요. “몇 살이냐”고 물어보면 말로 하지 않고 아직도 손가락 6개를 펴 보이거든요. ‘호적상 여섯살이지만 실제로는 다섯살이나 마찬가지’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요.

▽최〓유치원이나 학원이야 적응 못하면 다른 곳을 찾아볼 수도 있지만 초등학교 들어간 뒤엔 매번 전학을 보낼 수도 없고…. 초등학교엔 잘 적응을 하나요?

▽추〓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을 오래 다녀서 그런지 학교갈 때쯤이면 이미 사회성이 충분히 발달된 상태라면서요?

▽손〓하지만 초등학교를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유치원에 더 다니고 싶다는 거죠. 거기서 배우는 것들이 더 재미있으니까. 초등학교 교육이 좀 더 재미있고 다채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이〓아까 7세에 초등학교 보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요즘은 소아과에서 ‘학습 부적응아’ 판정을 받아서라도 학교에 늦게 보내려고 한대요. 일찍 들어가면 제대로 기를 못 펴고 죽어지내지만 몇 달이라도 밥을 더 먹으면 ‘대장’노릇을 할 수 있다나요? 바람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 꼭 대장을 해야 하는 거죠?

▽누군가〓그래도 졸병보단 대장이 낫지 않아요?

▽최〓이제 곧 아이들 여름방학인데 좋은 계획들은 세우셨나요? 아빠 휴가를 잘 맞춰야 할텐데….

▽손〓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 어린이집 방학에 맞춰서 휴가를 가기로 했어요. 아이가 방학 때 쉬고, 아빠 휴가 때 또 쉬면 그만큼 적응하기가 힘들잖아요. ▽추〓다들 비슷하군요. 우리아이 유치원은 방학이 두 달 정도나 돼요. 다시 적응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걱정이에요.

▽이〓그래서 여름방학 때 특강이니, 캠프니 프로그램을 마련해 아이들을 맡아달라고 요구하는 부모님들이 많아요. 하지만 방학 동안의 공백이 걱정된다면 이웃 유치원생들 몇몇이 소집단을 이뤄 매일 몇 시간씩 함께 어울리도록 하는 방법도 있어요.

▽추〓제가 사는 강남에선 다들 학원에 다니느라고 놀이터에서 노는 애들이 통 없어요. 좋은 방법 없을까요?

▽최〓꼭 이웃이 아니라도 친한 친구들끼리 어울려서 번갈아가며 시골집에 놀러가도록 하는 것도 아이디어 아닐까요? 자 이제 아이들이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느꼈을 테니, 어렵겠지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얘기해봐요.

▽추〓아이 때문에 상담도 많이 받아봤지만 ‘분리불안장애’라고만 하지 처방은 다 다르더라고요. ▽손〓케이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이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전 부모들에게 상담을 해줄 때 ‘먼저 엄마가 교육기관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자주 말해줬어요. 아이들은 엄마가 못미더워 하면 기막히게 알아차리고 같이 불안해하죠. 또 “네가 다니는 유치원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아니?”라며 아이에게 끊임없이 말해주는 것도 중요해요. 무의식중에 아이가 새로운 환경을 좋아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리고 월 수 금, 화 목 토 이런 식으로 띄엄띄엄 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3일을 몰아서 가는 방식으로 매일 일정한 시간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요령이죠.

▽김〓정말 그래요. 결국 엄마가 문제네요. 제가 들은 얘긴데요. 어떤 아이가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 문제를 일으켜 상담을 받아보니 성장과정에서 엄마의 불안증이 아이에게 전달돼서 그랬다는군요.

▽최〓엄마들도 중요하지만 선생님들의 역할도 그 이상 크다고 생각해요. 유치원이나 학원에 보낼 때는 주변 엄마들의 평판이 상당히 도움이 될 거예요. 아이들의 개성을 잘 파악해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전문가라야 하죠.

▽추〓집에서나, 유치원에서나 ‘칭찬’과 ‘관심’으로 아이를 안심시키는 것이 정도(正道)가 아닐까요?

▽김〓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를 가르치는 교육은 흔치 않아요.

▽최〓예비 엄마(아빠)교육을 받지 못하고 부모가 될 때 치르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부모 교육센터는 반드시 활성화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손〓큰 교회 등에 아버지교육이나 부모 심성교육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어요. 부모가 먼저 아이를 잘 키울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데 모두들 의견이 일치하는군요.

<정리〓정경준·김현진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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