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내자동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에서 만난 황재일 간사(28)는 상기된 목소리로 길수군 가족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길수군 가족의 한국행을 위해 구명 운동본부가 결성된 것은 99년 8월. 사업가 문국환씨(49)가 중국과의 무역관련 사업을 위해 방문한 옌볜(延邊)에서 우연히 만난 교포 최모씨(44)에게서 그들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뒤였다. 탈북자들을 노출시키면 오히려 더 위험에 처하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널리 알리는’ 길밖에는 이들 가족을 구원할 길이 없다는 판단에서 구명운동본부를 발족시켰다.
그 후 문씨는 중국을 한 달에 한번 정도 방문해 국내에서 모금한 이들 가족의 생계지원비 등을 전달했다. 고려대 김동규 교수(북한학과) 역시 운동본부 대표직을 맡아 언론 보도, 그림 전시활동 홍보 등을 도왔다.
황 간사는 “공안당국의 감시가 심해지거나 생계가 막막할 때마다 길수가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며 “최선을 다한다는 이야기만 할 뿐 정말 해줄 수 있는 일이 얼마 없다는 생각에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구명운동본부를 꾸려가는 데는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99년 10월 ‘99년 서울 NGO 세계대회’ 때의 일화. 대회 출품 신청시기를 놓쳐 무작정 대회장에 찾아가 그림을 전시하자 대회 관계자는 철수를 요구했다.
문씨는 “자유로운 학이 그립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린 길수군의 ‘소나무와 학’ 그림은 정식 출품작은 아니어서 결국 대회장 한쪽 빈 자리에 전시했다”며 “하지만 그 그림이 큰 반향을 일으켜 탈북자들에 대한 공론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길수군 가족들의 이야기와 탈북자들의 참상은 지난해 5월과 10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영국 채널 4, TV채널 등에 소개되면서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들의 한국망명의 길은 아직도 멀다.
“이제는 감시도 심해지고 더 이상의 지원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남은 희망은 유엔기구와 인도주의 정신에 호소하는 방법뿐입니다.”
<김정안기자>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