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상은 은행들이 인터넷 뱅킹쪽으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나타나고 있다. 1999년 12만명에 불과했던 국내 인터넷 뱅킹 고객수가 2000년 3월엔 529만명을 넘어섰다. 무려 44배라는 경이적인 증가율이다.
명실공히 ‘인터넷 생활금융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만하다. 인터넷 뱅킹은 1994년 미국의 웰스파고 은행이 처음 시작했다. 미국은행 중 자산기준 7위였던 이 은행은 현재 미국내 인터넷 뱅킹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은행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에서도 20여개의 은행들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인터넷 뱅킹은 이제 21세기 은행의 새로운 화두가 된 느낌이다. 이런 흐름에서 뒤지는 은행들은 시장에서 외면받고 사라지는 운명을 겪게 될 것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PC방을 보자. PC방에서는 초고속통신망 인터넷을 이용해 스타크래프트같은 게임을 네트워크 상에서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를 검색하고 e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업무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전자오락실은 반복적인 게임을 즐기는 수준에 그쳐 만족도 면에서 PC방을 따라갈 수 없었다. 당연히 고객은 PC방으로 발길을 돌리게 됐고, 고객의 외면을 받은 전자오락실은 쇠퇴하고 있다.
앞으로 인터넷 뱅킹의 물결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고객의 신뢰가 최대 자산인 은행이 고객의 관심과 필요에 부응하는 서비스를 갖춰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더욱 편리하고 안전한 금융거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금융권의 정보통신기술(IT) 부문 투자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IT업체가 은행을 흡수 합병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보스턴 컨설팅그룹의 칼 스턴 회장은 “은행은 인터넷을 통해 산업기반이 바뀌는 신경제의 대표로 가장 큰 변화를 겪을 것이다. 지점은 존속하겠지만 지점체계에만 의존하는 영업방식은 사라질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보완기능은 은행업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 국내 은행들은 기존 인력을 재훈련하고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동시에 구체적인 웹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있다. 아울러 점포망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마케팅 채널을 인터넷상의 마케팅 채널로 바꾸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바로 e-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으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인 것이다.
e-CRM의 시작은 개별 고객의 행동과 성향을 파악해 홈페이지 내용을 고객이 원하는 정보로 맞춰주는 ‘1대1 서비스’다.
최근 국민은행은 국내 금융권 최초로 e-CRM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 개발로 국민은행 홈페이지에서는 언제, 누가 클릭하느냐에 따라 다른 화면이 나타난다. 예컨대 오후에 접속한 40대 고객에게는 “나른하시면 기지개 한번 켜보세요”하는 인사말과 함께 ‘성공 재테크에 도전하기’ ‘건강 챙기기’ 등의 정보가 제공되고 고수익 상품도 함께 추천하는 식이다.
고객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고객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앞서 가지 못하는 은행은 전자오락실과 같은 운명에 빠지게 되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김상훈(국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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