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에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저개발된 권력으로서의 군부 파시즘의 시대는 끝났는가? 감히, 그렇다. 제도나 체제로서의 파시즘은 정치 무대에서 종말을 고했다.”
‘저개발된 권력으로서의 군부 파시즘’에 대해 종말을 선언한 저자는 동시에 새로운 싸움을 선언했다. 이 싸움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건강한 접합을 모색했던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에 대한 스스로의 모반”을 통해서 이뤄져야 했고, 군부 파시즘의 종말과 함께 소리없이 펼쳐진 ‘일상적 파시즘’과의 지난한 싸움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기에 저자 자신에게도 여간 힘겨운 싸움이 아니다.
한양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런 작업의 성과를 이미 저서인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1999), 공동저서인 ‘우리안의 파시즘’(삼인·2000) 등으로 세상에 내놔 독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번 저서는 글로써 그 싸움에 앞장서 왔던 그가 싸움의 과정에서 쌓인 글들을 묶은 것.
임 교수의 작업은 ‘민주화〓정치적 해방’이라는 단순화된 등식 이면에 새로이 성립된 권력의 합리화라는 날카로운 발톱이 숨겨져 있음을 사람들이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가 집요하게 이 문제를 파고드는 것은 그 스스로 그 발톱을 유일한 해방의 손길로 알고 의지해 온 자신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찌 보면 그의 작업은 외롭지 않다. 그가 잡을 수 있는 손들은 이미 유럽에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 미셸 푸코가 이미 일상의 권력을 처절하게 폭로했고, 롤랑 바르트가 언어에 스며 있는 권력을 한올한올 들춰냈으며, 장 보드리야르가 자본주의 권력의 말없는 지배를 잔인하게 일깨워줬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사는 임 교수는 유럽과 한국 사회의 현실적 간극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의 영역을 국가로부터 일상 생활로 확장함으로써 일상 생활 전체의 민주화를 이루려 했던 1968년의 유럽과 달리 1990년대에 이뤘다는 한국의 민주화는 단지 제한된 정치 영역의 해방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한국사회에서 싸워야 할 일상의 파시즘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책의 제1부에서 일상적 파시즘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제기했다면, 제2부에서 민족주의를, 제3부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제4부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민족주의 역사학이라는 ‘파시즘’을 부순다. 이 모두는 바로 1980년대까지 우리가 해방의 복음으로 여겨 왔던 것들이다. 그는 이런 이념의 억압을 폭로함으로써 이념이 끝내 추구하고자 하는 ‘이념의 속살’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 책의 단점이 유사한 주장의 반복이라면, 미덕은 바로 학술적 무게를 가진 글로부터 에세이까지 그 주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 다양한 독자에게 다가가는 저자의 노력이다. ‘일상적 파시즘’의 잔재가 배어나는 글로부터 일상의 소소한 자유를 즐기는 글까지,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 속에서 그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