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상식 뒤집은 유창혁의 기막힌 감각

  • 입력 2001년 7월 1일 18시 59분


◇백 중앙진출 차단하고 귀 실리까지 선수로 차지

◇춘란배 승기 잡은 절묘한 수

중국의 바둑 열기는 우선 중국에 도착하면서부터 느낄수 있다. 방송 및 신문의 취재진들이 공항에서부터 취재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창호 9단이 중국 거리를 걸어가면 금방 수백명의 사람들이 에워싼다. 그만큼 중국에서 프로기사는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국에서 이 9단에 버금가는 인기 기사가 바로 유창혁 9단이다. 특히 유 9단이 최근 중국 윈난(雲南)팀에 소속돼 활약하고 있어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그런 유 9단이 중국에서 주최하는 제3회 춘란배의 결승에 오르자 중국 언론의 취재 열기는 자국 기사가 결승에 오른 것 못지 않게 대단했다.

지난달 26일 중국 베이징(北京) 아시아호텔에서 벌어진 결승 3국은 1 대 1의 상황에서 맞은 최종국. 일본의 1인자인 왕리청(王立誠) 9단과 최근 점점 상승세를 타고 있는 유 9단의 대결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다. 하지만 유 9단은 초반부터 승기를 잡는다.

장면도를 보자.

왕 9단은 백 1로 꼬부렸다. 여기서 흑은 20에 지켜두는 것이 보통. 그러나 유 9단이 흑 2로 손을 돌려 백 3을 유도한 뒤 흑 4로 뛴 수가 기막힌 감각. 상식적인 수순을 따르지 않은 흑 4가 이 바둑의 흐름을 바꿨다.

상식대로 둔다면 흑 4로는 6으로 두는 것이지만 백 a, 흑 4에 이어 백 b로 들여다보는 수가 선수여서 백은 중앙으로 진출할 여유를 갖게 된다.

그러나 흑이 4로 먼저 두자 백은 5로 뛰어나갈 수 밖에 없었고 흑은 6으로 기분 좋게 연결해갔다. 만약 흑 4 때 백이 a로 둔다면 흑은 5의 곳에 씌워 중앙에 큰 세력을 쌓게 된다.

왕 9단은 내친 김에 백 7로 중앙으로 진출했지만 유 9단은 흑 18까지 귀의 실리를 선수로 크게 차지한 후 흑 20으로 기분좋게 지켜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

두터우면서도 실리에 뒤떨어지지 않는 유 9단의 스타일에 딱맞는 바둑이 된 것. 유 9단은 이런 식으로 판을 짜면 좀처럼 지지 않는다. 이 대국은 결국 유 9단이 한치의 허점을 보이지 않고 불계승을 거둬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로써 유 9단과 이창호 9단의 세계 기전 그랜드슬램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게 됐다.

현재 세계기전은 응씨배, 삼성화재배, LG배 세계기왕전, 후지쯔배, 춘란배 등 5개. 이중 유 9단은 LG배만, 이 9단은 춘란배만 손에 넣으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과연 사상 첫 세계기전 석권은 누구의 영예로 돌아갈까.

(김성룡 프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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