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기습폭우 패해 왜 커졌나>

  • 입력 2001년 7월 16일 00시 03분


14일 밤과 15일 오전 서울 등 수도권에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서울의 시간당 최고 100㎜ 강우량은 94년간의 기상관측 사상 세 번째로 많은 기록.

당국은 이런 점을 강조하며 피해가 불가항력적인 ‘천재(天災)’였다고 설명하지만 피해지역 주민들은 공무원들의 늑장대응과 부실한 배수관리가 빚은 ‘인재(人災)’였다며 항의하고 있다.

▽늑장대응과 불감증〓침수피해가 심한 서울 은평구, 강서구, 양천구 주민들은 “집이 물에 잠길 때까지 아무런 긴급대피 통보를 받지 못한 것은 물론 비가 그친 15일 오전에도 공무원들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동대문구 제기동의 이선수씨는 “15일 새벽 인근 수십 가구가 물에 잠겼지만 구청에서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았다”며 “15일 오후가 돼서야 공무원들이 와서 피해주민들의 이름을 적어갔다”고 말했다.

인천시 역시 14일 기상청의 기상특보 발령단계에 맞춰 공무원들에게 재해대책 1, 2단계 근무를 하도록 지시했지만 피해가 속출한 밤 12시경에야 건설국 소속 공무원 절반만 근무토록 했다.

하천범람으로 3명이 숨지고 주택 208가구가 침수된 경기 안양시 안양2동과 300여 가구가 침수된 석수2동은 지난해까지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피해가 없었던 곳.

지난해부터 인근 삼성천 상류지역에 재개발사업이 진행되자 주민들이 하천준설 등 대책마련을 요구했지만 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국 공사장 건축자재와 쓰레기가 교각에 걸려 물 흐름을 막는 바람에 인근 저지대 연립주택이 물에 잠기게 됐다.

서울시 재해대책 관계자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비가 내린 데다 시에서는 중랑천 등 주요 하천의 범람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정작 주택가 저지대의 피해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부실한 대책〓서울 동대문구 휘경동과 이문동 일대는 폭우가 쏟아지는 데도 중랑천 인근 휘경빗물펌프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700여 가구가 물에 잠겼다.

서울시의 하수도 시설 처리 용량은 시간당 강수량 74㎜. 최대 용량의 2배 정도에 이르는 이번 비를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하수관로가 상수도관, 도시가스관과 겹쳐 지나가거나 파손된 곳이 많아 처리 용량을 떨어뜨려 피해를 늘렸다.

경기 안양과 부천시의 경우 시간당 강수량이 50∼80㎜로 지난해 경기 남부의 수해 당시(90㎜)보다 적었지만 피해가 훨씬 컸다. 배수펌프 가동이 늦었기 때문이다. 구리시 교문동 주민들도 왕숙천변 배수펌프장이 늦게 가동되는 바람에 피해가 늘었다고 구청에 항의했다.

호우 때마다 지하철 침수 및 운행중단 사태가 일어나는 것도 수방대책의 허술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이번에 피해를 본 서울지하철 7호선은 개통 1년이 안된 신규 노선이라 처음부터 물막이벽을 높게 쌓고 제방을 보강했으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천부평구십정동백운빌라뒷산의 흙더미와 암석 일부가 주택가로 쏟아져 이 빌라 10가구 주민 30명이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주민들은 “비가 조금만 와도 빌라 뒷산에서 토사가 흘러 내려와 불안했다”며 “그동안 축대를 세워줄 것을 부평구청에 요구했는데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윤철기자·인천·안양〓박정규·남경현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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