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황에서 국민정서상 한일 공동 문화행사를 계속 추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까지 추진해온 문화교류를 완전히 중단해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민간공연 단체들은 행사를 일부 취소하고 있지만 문화관광부 산하 국립기관들은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게 현실. 이에 따라 국립기관들은 대부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 월드컵 기간에 ‘한일 국보 교류전’ 개최를 추진해 왔다. 조만간 일본측과 유물 대여 합의서를 조인할 계획이었는데 이번 사태로 일단 관망하기로 했다. 중앙박물관은 10월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근대미술품 특별전을 열 계획이지만 이것도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 특별전은 특히 일본 미술품을 국립박물관에서 처음 전시한다는 점에서 박물관측이 국민 정서상 상당히 부담을 느꼈던 것이 사실. 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일단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을 내리기 어렵지만 현재로서는 좀 기다려보면서 문화부와 논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도 월드컵 기간 중 서울에서 ‘한일 여성 미술전’을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준비를 일단 유보했다.
월드컵 축하 ‘한국 일본 중국 대표합창단 공동 음악회’를 추진해왔던 국립합창단도 상황은 마찬가지. 관계자들이 계속 논의를 하고 있지만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고 다만 일본은 빼고 중국만 초청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을 뿐이다.
국립중앙극장은 월드컵 기간 중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국악뮤지컬 ‘우루왕’을 공연하고 일본 작품을 서울에서 공연하기로 구두 합의한 상태. 한 관계자는 “이제 정식 계약 단계이지만 유보해야 할 것 같다”면서 “최종 결정은 문화부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문화 기관들은 이런 딜레마에 빠지자 가급적 빨리 문화부 차원에서 지침을 마련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똑같은 딜레마에 빠져있는 문화부 역시 특별한 원칙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일부 행사가 무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아직은 좀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립민속박물관의 월드컵 한일 교류전 ‘조선왕조의 미’는 일정대로 14일부터 홋카이도 근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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