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바트 지음 김경식 옮김
366쪽 1만2000원 을유문화사
배급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람으로서 요즈음 극심한 혼란에 빠지곤 한다. ‘도대체 어떤 흥행목표를 갖고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 때문이다.
요즈음의 한국 영화는 도무지 그 한계를 가늠 할 수가 없다.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서울 관객 동원 100만명이라는 마의 장벽이 2년전 ‘쉬리’의 돌풍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 다음 해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단숨에 이 기록을 갱신했다. 두 영화의 제작사들이 관객수 계산 방법의 오류를 문제 삼아 설전을 벌이고 있을 때, ‘친구’는 전국 관객 800만이라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위업’을 달성했다.
지금 한국의 영화산업은 영화 자체처럼 재미있다. 그리고 그 모습이 할리우드의 그 것과 많이 닮아 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간 ‘할리우드의 영화전략’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영화에 대한 이론이나 평론을 다룬 책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 산업, 그 자체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익숙한 우리 관객에게도 흥미롭다. 특히, 총을 들고 연기하는 것을 싫어 한다고 공언했던 톰 행크스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는 과정, 자신이 직접 발굴하고 개발한 영화만 감독을 맡기로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이저 스튜디오가 직접 기획한 이 영화의 감독을 맡게 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등, 이 책은 할리우드의 권력 상층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의사 결정 과정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분석적이면서 흥미있는 이야기가 공개될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인 피터 바트가 수년간 영화전문지의 편집장으로서 그리고 메이저 스튜디오의 경영 간부로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경험에 기인한다. 저자는 각 메이저 스튜디오의 최고 경영자의 개인적인 성향과 리더쉽, 흥행을 읽어 내는 예측력과 직관, 그리고 그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그들이 만들어내는 영화의 성패가 엇갈리는 과정을 우리가 모두 알 만한 최근의 영화들의 예를 들어 차근 차근 설명하고 있다.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한 ‘타이타닉’이 전세계적인 흥행을 몰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제작한 20세기폭스는 무려 3억불에 달하는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이 영화에 쏟아 부으며 회사가 문을 닫을 뻔한 위기를 겪었다는 이야기는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되새겨 볼 만한 것이었다.
현재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경쟁은 가히 신경과민 상태에 이르렀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한국 영화의 블록버스터 붐도 이에 만만치 않다. 새로 개봉되는 영화들은 일단 제작비 규모에서 계속 기록을 갱신 중이다. 앞으로 나올 ‘무사’ ‘2009 로스트 메모리스’ ‘화산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영화들의 제작비를 합치면 2, 3년 전 한해 동안 만들어졌던 50∼60여편의 한국 영화들의 총 제작비에 맞먹는 수준이다. 한국영화의 블록버스터 경쟁으로 인해 야기될 앞으로의 우리 영화계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미리 볼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김승범(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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