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땅 인도에 처음 와서 무척이나 헤매다가 식당에 가면서 드디어 안도했습니다. 그래도 인도 음식은 좀 만만할 것 같았거든요. 무엇보다 믿고 있는 '카레'가 있으니까요. 한국땅 일본땅에서 먹어본 카레 종류만 해도 여러가지니 본토 인도땅에선 각양각색 다양한 카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메뉴판엔 전혀 모르는 음식 이름뿐이고 맨 끝에 민망하게도 단 하나의 '커리'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별 수 없이 하나 있는 거라도 시켜보자 하고 '치킨 커리'라고 되어 있는걸 주문했더니 뼈까지 붙어있는 닭다리 하나가 노랗고 멀건 국물 안에 덩그러니 놓여진, 보기에도 민망한 조그만 접시가 하나 나오는 겁니다. 감자와 각종 야채와 닭고기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만든 카레를 기대했던 우리는 실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알고보니 그나마 외국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식당이라 '커리'라는 이름이 하나라도 있는 거고 서민 식당의 메뉴에서는 아예 '커리'란 이름이 붙은 음식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그 '커리'는 어디에?
'커리'(Curry)라는 이름은 순전히 외국인들이 갖다붙인 이름이라고 하네요. 예전에 인도를 찾은 포르투갈인들이 인도인들이 밥 위에 노란 무언가를 얹어 비벼먹고 있는 걸 봤답니다. 그래서 그 소스가 뭐냐고 물었는데 이 인도인들은 그 안의 재료가 뭔지 물었다고 생각하고 '커리(야채고기)'라고 대답한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지요. 어쨌든 인도인들이 자신들의 요리를 커리라고 부르지는 않더군요.
분명히 메뉴엔 커리가 없지만 이것 저것 다른 이름의 음식을 시켜보면 노랗고 냄새가 톡 쏘는 것이 분명 커리입니다. 그렇다면 이 노랗고 매운 것의 정체는 무엇이냐. 우리가 생각하는 그 커리는 인도의 많은 음식들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스입니다. 어찌보면 우리의 된장, 고추장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봉지에 담겨 있는 노란 카레가루로 만드는 것은 물론 아니구요. ^^; 수십가지의 향신료를 조합해 약간씩 다른 맛을 낸다고 합니다. 어떤 향신료를 조합하느냐에 따라 매운 정도와 향이 모두 다르다고 하는데 물론 우리 입맛에는 그게 그 맛-커리 맛이더라구요.
이 기본적인 소스를 애용해서 많은 음식을 만드니 그 이름이 '커리' 하나로 불린다는 것은 당연히 말이 안될 수 밖에 없겠죠? 고추장 넣어 만든다고 다 '고추장 뭐뭐' 하는 이름이 붙지 않듯이 말이에요. 주 재료가 무엇이고 주 요리법이 무엇인가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는 커리는 수많은 이름으로 불린답니다. 바꿔 말하면 '커리'가 아닌 어떤 요리를 시켜도 커리 맛이 나는 요리가 나올 확률이 매우 높지요.(카레맛 피자 먹어 보셨어요? -_-; )
◈커리와 그의 사촌들
커리향이 물씬 풍기는 다양한 요리들은 대부분 커리향의 묽은 국물과 건더기로 나오는데, 이름도 모양도 무궁무진할 정도로 많습니다.
△Curry(맨 위 사진)
요것이 바로 인도에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은 'curry'라는 이름이 붙은 음식입니다. 뼈째 나온 '치킨 커리'죠. 국물이 상당히 묽지요. 하지만 맵고 짠 향은 역시 카레맛 그대로더라구요. 드물긴 하지만 '커리'란 이름이 붙어 있으면 일단 확실히 커리이니 걱정 말고 주문해도 될 것 같아요.
△Masala
이건 갠지즈 강이 있는 도시 바라나시에서 먹은 '치즈 마살라'라는 음식입니다. 인도에선 길거리에 차보다 많은 것이 소와 염소이다 보니 인도의 유제품은 종류도 많고 아주 유명하다고 하네요. 위에 하얗고 길쭉한 것도 치즈고, 안을 뒤져보면 두부처럼 네모로 썰어놓은 것이 있는데 이것도 치즈. 소스 맛은? 역시 커리 비스므리하죠. ^^;
△Kofta
히얏. 일본의 각종 '~까스 카레'를 능가하는 맛있는 음식인 '말레이 코프타'입니다. 삶은 감자와 치즈 등을 으깨서 소금간하고 다시 감자 크기로 뭉친 후에 기름에 튀기면 꼭 고구마 닮은 크로킷이 되지요. 거기에 각종 야채가 들어간 커리맛나는 소스로 마무리. 색깔은 꼭 커리지만 다른 것에 비해 커리 맛이 덜나는게(?) 맛있었습니다.
△Dhal
'달'이란 건데요. 커리의 사촌으로 넣기 무색할 정도로 독보적인 그것만의 맛을 가지고 있는 음식이죠. 밥이나 빵이랑 함께 먹는 인도의 가장 기본적인 음식 중의 하나라고 하네요. 기본은 콩과 향신료를 넣고 끓인 후 으깨서 다시 끓여 만드는데, 어떤 콩을 쓰느냐에 따라 그 종류가 너무 많고 다양하답니다. 역시 커리 맛이 약간 나긴 하는데 콩맛이 더 많이 나서 오히려 고소한 편이랍니다.
휴, 너무 복잡한가요? 인도 커리의 사촌들이 너무 많아 유명한 것만 몇개 소개했는데도 한참이군요. 그럼 이 요리를 어떻게 먹을지 고민해야겠죠? '카레 시키면 밥 당연히 나오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인도를 만만하게 생각했다면 매운 커리 국물만 홀짝여야 하는 비극적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답니다. 맛있는 인도 빵을 국물과 건더기에 쿡 찍어먹어도 되고 알알이 떨어지는 밥을 시켜 비벼먹어도 되지요. 용기 있는 사람은 손으로 시도해보세요. 인도사람들은 손 끝에 맛을 느끼는 감각이 있다고 생각한데요. 그래서 밥도, 국물 안에 있는 건더기도 손으로 쓱쓱 비벼 잘 먹는답니다.
☞ 어디서 먹나요?
외국인 여행자가 많이 가는 식당에선 친절하게 내용물이 함께 설명된 '커리'라는 메뉴를 볼 수 있답니다. 여러가지 '커리의 사촌들'을 시도해 보고는 싶은데 이름도 어렵고 겁도 나는 분들은 인도의 가정식 백반이라고 할 수 있는 '탈리'를 주문해 보세요. 서민적인 인도 식당이라면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이 메뉴는 다양한 맛의 커리 사촌들과 밥 혹은 빵이 세트로 나오니 고민 않고 다양한 맛의 커리들을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참, 위에서 소개한 감자 크로킷 '코프타'를 진짜로 잘 하는 집을 알고 있어요. 눈부시게 하얗고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로 유명한 타지마할 아시죠? 타지마할이 있는 곳이 인도의 수도 델리 옆에 있는 작은 도시 아그라란 곳입니다. 타지마할 구경하고 서쪽 문으로 나와 호텔들이 많은 타지간즈 쪽으로 가다보면 조그만 'Jonny's Place'란 식당이 있답니다. 전세계의 배낭족들에게 아주 아주 유명한 곳이죠. 늘 손님이 꽉꽉 차는데 모두들 이 코프타를 먹고 가더라구요.
솔직히 저흰 매끼마다 건더기만 다른 커리를 먹기가 고역이긴 했지요. 그리고 어느것도 우리 카레만큼 맛있지도 않구요. 단 3분만에 건더기 풍부하고 뭉근한 '카레'를 먹을 수 있도록 개발한 일본 사람들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원.
몸 속에 카레색 노란 피가 흐를 것 같은 꿈틀이부부. tjdaks@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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