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는 아이치(愛知)현 출신의 재일동포 2세로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 김행일(金幸一·59·택시운전사)씨. 김씨는 “조총련의 북송사업에 속아 북한으로 가는 바람에 인생을 망쳤다”며 4일 소송을 냈다.
김씨는 1961년 6월 “북한에 가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조총련의 권유에 따라 북송선을 탔다.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옛 소련과의 국경지대인 웅기의 기계공장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속았다고 생각한 김씨는 62년 11월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국으로 귀순했다. 김씨는 곧바로 일본으로 돌아가 북송사업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싶었으나 한국의 정보기관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고 조총련쪽에서도 ‘일본으로 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이 들려와 포기했다.
김씨는 40년이 지나 제소를 한 데 대해 “그동안 일본에 올 수도 없었고 힘도 없었다”면서 “재판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조총련의 잘못을 알리는 것이 재판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재판은 일본의 시민단체인 ‘북한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도와주고 있다. 형사책임은 시효가 끝나 민사소송을 내게 됐다. 59년부터 84년까지 실시된 북송사업으로 북한으로 간 재일동포와 일본인은 9만3000여명. 북송사업과 관련해 조총련을 상대로 제소한 것은 김씨가 처음이다.
조총련측은 “북송사업은 일본적십자사와 북한적십자사의 합의 아래 이뤄진 것으로 조총련에는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