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형만/위헌 소지 법령 한둘 아니다

  • 입력 2001년 8월 5일 18시 42분


법치주의에 바탕을 두고 개혁하라는 대한변호사협회의 결의문과 관련해 논란이 분분했다. 여당은 결의문 내용이 근거가 없는 정치성을 띤 비판이라고 매도하고, 야당은 올바른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라고 여당을 몰아붙였다. 여야간의 아전인수격인 논쟁을 국민의 입장에서 지켜보면서 민생을 외면하는 정파싸움에 넌더리가 날 정도이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면 법치주의에 부끄럽지 않은 정부가 있었다고 과연 자부할 수 있을까. 비민주적인 정치 풍토와 정부 주도의 경제 압축 성장 추진 과정에서 행정 만능주의는 끝없이 판을 쳤고 법치주의는 종종 훼손돼 온 것이 사실이다. 기본권 보장 규정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힘을 가진 권위주의적 정부에 의해 번번이 원칙이 무너져 온 것도 사실이다.

좀 오래된 것으로는 1994년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토지초과이득세법이 좋은 예이며 가까이로는 1인1표의 비례대표제 선거방식을 위헌이라고 결정한 지난달 19일 헌법재판소의 판정이 전형적인 예이다. 위헌 제청을 하면 이 밖에 얼마나 많은 법령이 위헌 판정을 받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실입법이 성행했던 것이다. 수많은 법령의 초안이 밀실에서 만들어지고 국회에서는 정쟁으로 세월을 보내느라 졸속으로 심의하다 보니 입법부가 아니라 통법부라는 비난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이렇게 만들어진 법률 가운데 대부분은 그 당시 개혁정책을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었다. 이견을 무시하고 우격다짐으로 제정된 법률은 시행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가 노출되기 마련이고 그 법률들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대로 위헌의 심판대에 오르는 운명을 맞아온 것이 한국의 현실이었다. 따라서 법치주의에 어긋난 조치가 있었다 해도 대부분의 경우 법을 시행하고 난 뒤 상당 기간이 지난 다음정권에 가서야 판가름이 나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변협의 결의문을 둘러싸고 지금 여야가 아무리 입씨름을 해보았자 소모적 논쟁에 불과한 부질없는 짓일 뿐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법치주의 문제는 결코 여야의 책임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입법권이 국회에 있고 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이 국회에 있을진대, 법치주의를 지켜 나가야 하는 것은 여야 공동책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헐뜯는 것은 참으로 볼썽 사나운 행태다. 비생산적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차라리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안 심의에 좀 더 정성을 쏟고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법치주의 논쟁으로 여야가 시간을 낭비할 게 아니라 부실입법을 양산했던 과거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구체적인 개선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의 공감과 신뢰를 받도록 해야 한다.

과거 비민주적인 정권에서 만들어진 법령 중에는 위헌 소지가 뚜렷한 법령이 하나 둘이 아니다. 관행이 되다 보니 문제로 인식하지도 못한 채 방치되고 있기도 하며 때로는 뚜렷한 부작용과 문제점이 제기되어도 권한을 지키려는 정부 부처의 저항 때문에 시정되지 않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법령을 헌법소원이 제기되고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이 난 뒤에야 고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유치장의 화장실이 그토록 인권침해 상태였는데도 수십 년 동안 방치하다가 최근에 와서야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게 된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위헌판정이 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는 법령을 찾아내 여야 합의로 고쳐 나간다면 국민의 권익 보장을 위해 이처럼 값진 일도 없을 것이다. 30대 기업집단 지정 규제만 해도 헌법상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경쟁을 제한하여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가 많이 있었지만 주무 부처의 기득권 때문에 자발적인 개선 노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여야가 합심해 위헌 소지가 있는데도 방치되고 있는 법령을 찾아내 개선하는 작업을 펼친다면 이번의 법치주의 논쟁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고 민생과 민권을 향한 여야의 협력에 국민은 박수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형만(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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