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일본인이 쓴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필독서로 앞으로도 널리 읽혀질 것임에 틀림없다. 저자 존 다워는 미국을 대표하는 일본 현대사 연구자로,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지금은 MIT 대학의 교수로 있다.
이 책은 1999년 미국에서 출판됐는데, 퓰리처상을 비롯해 열 개 이상의 상을 받았다. 미국에서 일본을 대상으로 한 연구서가 이렇게 높은 평가와 관심을 모은 것은 매우 드문 일인데, 이것은 역사가로서의 다워의 재능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일본어판은 상하 두 권으로 900쪽을 넘는 대 저작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대단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은 1945년부터 1952년에 이르는 ‘점령기’ 일본의 발자취를 더듬어 간 책이다. 다워는 GHQ에 의한 점령 정책의 전개, 일본국 헌법의 작성, 일본의 전쟁 범죄를 재판한 극동군사재판, 그리고 일본이 주권을 회복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방대한 자료를 치밀하게 읽어 내려가며 풀어냈다.
저자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일본이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왜 천황제가 존속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전전(戰前)의 대 일본제국 헌법과는 달리, 지금의 일본국 헌법에서 천황은 실질적인 국가원수가 아니라, 정치적 권리가 전혀 없는 ‘상징’적인 지위에 머물러 있다.
이같이 애매모호한 규정에 이르게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천황제를 유지하려고 했던 일본의 보수적 지도층과, 천황제를 이용하려고 했던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의 의도가 결탁되었기 때문이다. 다워에 의하면,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천황제 민주주의’라는 기묘한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도식적으로만 이 책을 파악해 버린다면, 그 진가는 반감되고 만다. 다워는 복잡다단하고 냉혹한 현실 정치의 거센 흐름에 배반당하면서도, 안간힘을 써 가며 일본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려고 했던 사람들-미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의 정열과 노력을 파헤치는 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를 위해 다워가 생각해 낸 방법론이다. 다워는 단일한 ‘일본 문화’ ‘일본 전통’ 등은 존재하지 않으며, 더우기 단일한 ‘일본’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복수의 ‘일본 문화’, 복수의 ‘일본들’을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워는 지도층이나 유명 인사 뿐 아니라, 당시 삶의 현장에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가 보통의 역사서에서는 무시하기 쉬운 유행가나 유행어, 나타났다가는 금방 꺼져 가는 무수한 대중 잡지, 새롭게 출현한 대중 오락 등에 주목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거기에서 새롭게 부각된 것이, 패전 직후의 일본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심지어는 어린이들까지도 ‘좋은 사회’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비판적인 시점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니다. 패전국으로서의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임만을 강조한 나머지, 아시아에 대한 가해자 의식을 완전히 망각해 버린 점을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점은 그 좋은 본보기이다.
당시의 일본은 지금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정형(無定形)의 에너지로 충만돼 있었다. 허탈감과 해방감, 진지함과 난잡함이 동거하는 모순된 상황 속에서, 모두가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워는 일본의 ‘패배’야말로 ‘자기 변혁을 위한 둘도 없는 기회였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럼으로써, 이같은 정신적 지향이 그 후의 일본에서 없어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그는 무척 애석해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작업을 통해, 다워는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지금의 일본 사회를 향해, 다시 한번 ‘전후’의 원점을 응시하라고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이연숙(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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