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0년. 선머슴같던 그 여학생은 한국 여자축구의 간판 스타로 성장했다. 7일 끝난 토토컵 국제여자축구대회에서 브라질전 선취골, 중국전 동점골을 넣어 한국의 우승을 이끈 이지은(22·숭민원더스)이 그 주인공.
9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대표팀에 합류하는 이지은을 소집 3시간전 만났다. 1m60의 자그만 체구에 아직 학생같은 단발 머리, 깜찍해 보이는 동그란 눈 때문인지 축구 선수라기 보다는 막내 여동생 같았다.
“아저씨 정말 기자같아요.” 이번 대회를 마친 소감을 묻자 활짝 웃으며 농담부터 건넨다. 듣던대로 구김살없고 밝은 성격이었다.
“좋죠. 그냥…. 여자축구에는 골 세러모니가 없었어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골을 넣으면 두 팔을 벌리고 벤치에 앉아있는 언니들에게 달려가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만 깜빡하고 말았어요. 나중에 혼났어요. 그리고 여자축구도 한일전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일본전이 가장 신경쓰이고 힘들었어요.” 똑똑 부러지는 말투지만 처음 만났을때부터 얼굴에 가득했던 웃음은 말하는 중에도 그칠줄 모른다.
-원래 그렇게 잘 웃어요?
“….” (이지은이 머뭇거리자 마침 함께 나온 옛 팀동료 강혜진이 “지은이는 항상 웃고 다녀요. 훈련때도 웃다가 감독 선생님한테 혼나요. 그래도 착하고 붙임성이 있어 다 좋아하죠”라며 거든다)
-별명은 뭐예요.
“짤막이…. 키가 작아서 주위에서 전부 다 그렇게 불러요.”
-어쩌다 축구 선수가 됐나요.
“어릴때부터 볼을 끼고 살았어요. 뛰어다니는게 좋았는데 기왕이면 볼을 차고 뛰는게 더 재미있었죠. 중2때 울산 현대여중에 여자축구팀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을 졸라 전학갔어요. 다시 태어나도 축구할거고 나중에 결혼해 딸 낳으면 제일 먼저 축구공부터 사줄거예요.”
-축구를 하지 않았다면….
“뭐든 볼을 사용하는 운동 선수가 됐을거예요. 지금도 고향 내려가면 동네 남자애들 다 끌어모아 농구하고 그래요.”
-주변에서 여자축구 선수를 바라보는 눈이 다를텐데….
“화장실이랑 목욕탕 가기가 제일 싫었어요. 한동안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깎고 다녔는데 얼굴까지 검게 타 영락없이 남자였죠. 제가 여자화장실에 있으면 다른 여자분들이 들어왔다 놀라서 다시 나가 여자화장실이 맞는지 확인하곤 했죠.”
-이번 대회 끝나고 달라진 점이 있나요.
“길거리에서나 택시 탔을 때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즐거워요. 대신 행동거지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됐어요.”
-축구를 하면서 후회한적은?
“고교때 매일 같은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딱 한 번 지겹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또래 여자 아이들 노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요.”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보약같은걸 먹나요?
“평소 체력 훈련이 엄청나요. 지난해에는 새벽 오전 오후 야간으로 나눠 하루에 ‘4탕’을 뛰기도 했어요. 보약은 특별히 안먹어요. 고기를 많이 먹죠.”(동료 강혜진이 다시 한번 핀잔을 주자 동충하초, 자라, 뱀술 등등 그간 이지은이 먹은 보약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외모에도 신경쓸 나이인데….
“여자하는게 뭐 있겠어요. 맨날 거울 앞에 있는거지.” (이지은이 소리내 웃으며 “하지만 원래 외모 치장하는데는 영 재주가 없어요”라고 덧붙였다)
-축구는 대회 기간이 길어 생리때 신경이 많이 쓰일텐데. 육상에서는 약물로 조절을 하는데 어떻나요.
“그냥 무시하고 해요. 걸릴 때 오히려 컨디션이 좋아지는 선수도 많아요. 저도 그런 경우죠.”
-돈은 많이 벌었나요?.
“연봉으로 받는데 제가 생각할땐 꽤 받아요. 매월 조금만 떼고 나머지는 다 고향 부모님께 보내요. 제가 3녀중 장녀거든요. 용돈중 가장 큰 것은 휴대전화 사용료예요.”
-한국 여자축구 수준은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어떤가요.
“아직 힘에 부치지만 많이 따라잡았어요. 미국이나 중국 선수들은 어릴때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았잖아요. 그게 차이점같아요. 제가 딸이 생기면 볼부터 사준다는건 어릴때부터 교육을 시키겠다는거예요. 앞으로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요.”
-꿈이 있다면….
“기회가 된다면 미국 프로리그에서 뛰어보고 싶고요. 장래 한국 여자축구 여자감독 1호가 되는게 꿈이죠.”(이지은은 중학교 시절부터 나름대로 자신이 뛴 매 경기 축구 전술을 분석해 그림을 그려 모아왔고 각종 축구전술 관련 테이프나 서적을 구입하는데 매월 일정액을 투자해왔다. 일명 ‘축구 자료왕’)
2시간여가 흐르자 부지불식중 이지은이 “아저씨 키가 얼마나 돼요. 나하고 별 차이가 안나는거 같은데…” 등등 거꾸로 나를 취재하고 있었다.
밝고 적극적인 이지은의 성격.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정리〓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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