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찬의 문화 비평]'기다림'의 미학

  • 입력 2001년 8월 21일 18시 45분


극단 산울림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산울림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여름이 가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문득 얼마나 가을을 기다려왔는지 느끼곤 한다. 한편으로는 다가오던 가을을 밀쳐내고 다시 자리를 틀고 앉아 열기를 뿜어대는 늦더위를 견뎌내며, 가을에 대한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는지 통감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덥고 긴 여름에 기다렸던 것이 ‘가을’뿐이었으랴.

△에스트라공〓그만 가자.

△블라디미르〓갈 순 없어.

△에스트라공〓왜?

△블라디미르〓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참 그렇지.

◆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고도'

새뮤얼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수 차례 반복되며 두 사람의 ‘기다림’을 지속하게 하는 대사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이 두 사람은 매일 해질 무렵이면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시골길 한 모퉁이에 찾아와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나누며 ‘고도’를 기다린다. 밤이 되면 잠자리를 찾아 떠났다가, 다음 날 저녁이면 다시 그곳에 나타나 ‘고도’를 기다린다. 1953년 파리의 바빌론 소극장에서 이 연극이 초연되기 전부터 시작된 이들의 기다림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계속된다.

베케트는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냐는 질문을 받고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2차대전 당시 프랑스 친구들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돕다가 피신해 숨어지내야만 했었던 베케트가 기다렸던 것은 그저 ‘전쟁이 끝나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 현재의 어려움을 견뎌내는 힘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 알면서도 기다렸다”고 노래했던 시인 안도현은 장생포에서 ‘고래’를 기다렸지만, 어떤 이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경기침체가 이만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어떤 이는 지리한 정치놀음이 그만 끝나기를 기다린다.

어떤 이는 오늘도 변함없이 떠난 ‘님’을 기다리지만, 어떤 이는 다음 ‘시합’을 기다리고, 어떤 이는 아직도 ‘대박’을 기다린다. ‘고도’는 각자의 마음 속에 있다.

그러나 인터넷과 이동통신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의사소통을 요구하며, 새벽 3시에 상가로 쇼핑을 하러 나서는 사람들에게 ‘기다림’이란 이미 생소한 단어가 돼 버렸는지 모른다. 이제 밤과 낮, 주중과 주말의 시간 경계를 무너뜨리며 하루 24시간을 스스로 편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기다리라’는 것은 쉽사리 참아내기 어려운 주문일 수 있다. 그래서 올 여름의 긴 터널은 유난히도 지루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나요"

그럼에도 ‘기다림’은 현재의 어려움을 견뎌내는 힘이다. 적어도 자신이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 ‘기다림’으로 현실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신라의 왕자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왜국으로 떠난 남편 박제상을 기다리며 치술령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통곡하다 망부석(望夫石)이 된 아내 국대부인(國大夫人). 남편에 대한 그의 ‘기다림’은 그의 마음 구석구석,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가득 채워 그를 망부석이라는 기다림의 결정체로 만들었다. 그 기다림은 그의 낭군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 뻔하다는 현실을 넘어 님에 대한 그의 사랑과 그리움을 영원한 것으로 남게 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현실에 불만을 품고 투덜대면서도 정작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잊고 있는 사람들이다. 긴 여름의 터널 끝에서, 내 삶의 일부를 바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 ‘진정’ 내가 기다려 온 것인가 질문을 던져 볼 일이다.

김형찬 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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