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고무돼 6·15공동선언 이후 1년여 동안 남북관계의 ‘선(善)순환’에만 관심을 갖다 보니 ‘악(惡)순환’의 고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끊어야 할지 모른 채 허둥대는 와중에 이번 사태가 터졌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정부 관계자들도 이에 수긍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당국자는 “솔직히 우리의 대북정책은 최선의 상황을 상정해 추진돼 왔으나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일시 정체되면서 정부가 초조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초 통일부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보고한 ‘2001년도 통일부 주요업무 추진계획’의 첫째 항목 또한 낙관론에 바탕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였다.
정부가 이처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이라는 ‘빅 이벤트’ 준비와 분위기 조성에 매달리다 보니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민이 겪고 있는 이념적 혼란과 그로 인한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대책 마련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
전문가들은 또 “이제부터라도 대북 관련 제도 정비를 비롯한 남북관계의 제도화 노력과 함께 그를 바탕으로 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유호열(柳浩烈·북한학) 고려대 교수는 “이번 사태는 정부의 안이한 대북 낙관론에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다”며 “남북관계의 진전은 나름의 질서를 잡아가며 추진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현행 법 체계를 유지하면서 순차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혼란과 갈등이 ‘남북관계가 진전하는 과정에서 겪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점은 대부분 동의하지만 정부가 그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을 얼마나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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