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재벌 은행소유 '그림의 떡'

  • 입력 2001년 8월 24일 18시 19분


재벌은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될 것인가. 재정경제부가 28일 금융연구원과 공동으로 공청회를 열어 은행의 소유지분한도를 현행 4%에서 10%로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벌의 은행 소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는 데는 조건이 너무 많아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은행 소유지분한도를 완화하는 것은 은행에 투입된 52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조기에 회수하기 위한 것일 뿐 재벌의 은행 소유 허용은 아닌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금융계 관계자).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의 재벌이나 국내 자본은 국내은행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경영하기 어렵게 되고, 제일 한미은행 등의 경우처럼 외국자본만이 국내 은행을 가질 수 있다.

▽재벌의 은행 소유 산 넘어 산〓공청회에 부쳐질 은행법 개정시안에 따르면 재벌이 은행의 지분을 4% 이상 소유하려면 △취득한 지 2년 이내에 그룹의 제조업 비율을 25% 밑으로 낮추거나 △제조업 자산을 2조원 미만으로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 조건을 맞추는 재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지분을 10% 소유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재벌은 삼성 SK LG 등이나 이들은 제조업 비율을 25%로 낮추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이 조건을 맞출 수 있는 중견 재벌들은 은행을 인수할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김영삼 정부 시절 금융전업가나 금융전업그룹 제도가 도입됐지만 현실성이 없었다”며 “대신증권 교보생명 등 금융전업그룹으로 꼽히던 그룹들도 은행을 소유할 만한 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유지분 완화는 연기금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은행 소유지분 제한을 완화하는 것은 민영화를 통해 공적자금을 조기에 회수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내년에 지자체와 대통령 선거가 있어 공적자금 문제가 정치쟁점화될 것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따라서 지분제한을 완화한 뒤 연기금의 은행 주식 매수를 늘림으로써 민영화와 공적자금 회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이 적지 않다. 은행 소유구조 개편 문제가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될뿐더러 은행권에 투입된 52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최대한 회수하기 위해서는 은행의 경영정상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대선 등 정치일정에 맞춰 일을 추진하다 양쪽을 모두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찬선·이헌진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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