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관련해 오늘날 동양화에 대해 나타나는 태도는 세 가지다. 전통을 절대시하거나, 반대로 전통을 부담스럽고 심지어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이 둘을 어정쩡하게 결합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 전통의 구체적 현실과 멀어져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역사적 의식의 흐름이 단절돼 공백이 생겼고, 이로 인해 현재와 과거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우며, 그 결과 전통을 현실에서 추상화시키는 오리엔탈리즘에 쉽게 동화됐기 때문이다.
이 공백을 최대한 좁혀 의식을 자연스럽게 이어야 한다. 동양화가 삶 및 이상과 긴밀하게 어우러져 역사적으로 전개돼 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동양화의 특징 중 하나로서 정신적 자유의 실현을 들 수 있는데, 나는 이를 와유(臥遊·직접 산천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방에 누워서 그림을 보며 노니는 것)사상이라고 규정하고 그 형성, 구현 및 실현이라는 주제로 중국의 위, 진, 남북조에서 송나라까지를 연구했다.
이를 통해 오늘날 동양화에서 여전히 맹신하고 있는 산수(山水), 용필(用筆), 용묵(用墨), 삼원법(三遠法·아래에서 위를 보는 방식,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 산 앞에서 산 뒤를 엿보는 방식, 이 세 가지 시점을 한 곳에 종합해 그림으로써 감상자가 작품 속에 들어가 노닐게 하는 것) 등은 중국 지식인들이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역사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앞으로는 이를 명나라와 청나라시대로 확장해 지식인의 이상이 현실에서 좌절되면서 어떻게 이런 조형들이 변화돼 갔는가, 그리고 전통적 지식인이 없어진 오늘날 그 산물인 동양화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살펴보려 한다.
공백을 매우는 또 하나의 작업은 고대 화론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동양의 전통 예술은 이상의 실현과 관련돼 발전하면서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당시에는 많은 화론들이 저술됐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에겐 이런 것이 체계적으로 번역돼 소개된 것이 없다. 나는 동양화론 중 가장 고전적이고 양과 질 면에서 탁월한 것으로 중국 장옌위앤(張彦遠)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847년경)를 꼽는다. 이 책은 바자리(G.Vasari)의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1550)에 비견될만한 저술이다. 나는 이 책을 번역하고 상세한 주석을 붙이는 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밖의 여러 화론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두 작업은 시간적으로 고대에 한정돼 있지만 문제의식은 현재의 실천에 있다. 실천 이전에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하고, 실천은 앎이 전제될 때 정치해지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전통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변한 오늘날 동양화도 변해야 하며, 그렇게 되는 것이 역설적으로 동양적이라는 입장에 나는 서 있다.
조송식(서울대강사·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