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세상]말이나 못하면…

  • 입력 2001년 8월 26일 18시 25분


“또 잃어버렸어. 이번엔 뭐야?”

노총각 회사원 박모씨(36)는 만난 지 1년 된 ‘띠동갑 여자친구’ 김모씨(24)에게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갖고 있는 물건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김씨의 못된 버릇이 다시 도진 것.

김씨가 택시에 두고 내린 물건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머리핀 휴대전화 지갑 우산 가방 안경 반지…. 얼마 전부터 둘이서 택시를 탈 때는 반드시 박씨가 나중에 내리면서 김씨가 무엇을 놓고 내렸는지 ‘확인’할 정도.

이번엔 휴대전화였다. 낮에 잠깐 만났을 때만 해도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그새 잃어버린 것이다.

“아까 분명히 들고 있었잖아? 잘 생각해 봐.”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생각이 안나. 귀신이 가져갔나?”

박씨는 이번에야말로 버릇을 고치겠다는 생각으로 김씨를 다그쳤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야, 엉?”

이때 김씨가 윙크하면서 한마디했다.

“‘자기 얼굴’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테니 한번만 용서해줘, 잉∼.”

박씨의 모진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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