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영화 ‘친구’를 보고 나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저건 내 이야긴데…”였다. 극장의 한 구석에서 내가 그려낸 추억의 편린들을 보며 친구 혹은 애인끼리 속삭이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들은 마치 오랜만에 빛바랜 앨범을 들춰보는 것 같았다.
‘메모리스 아일랜드’에 담은 노래들도 희미해진 나의 추억을 되살려 낸다. ‘지금 창밖엔 비가 내리죠’로 시작하는 노래 ‘찻잔’은 필름이 너무 오래돼 스크린에서 ‘비가 내리는’ 슬픈 영화 한 편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동안 뜸했었지’를 부른 ‘사랑과 평화’. 20년전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이들은 ‘한동안 뜸했었지’의 연주를 마치자마자 드럼 스틱을 객석으로 던졌고 나는 운 좋게 그 스틱을 받아 보물처럼 간직했다.
배철수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를 부르고 있는 나를 보고 아버지께서 “그게 타령이냐 노래냐”라고 묻던 기억도 난다.
팝송은 중1 때 처음 듣기 시작했다. 맨 처음 가사를 외운 게 ‘펑키 타운’이다. 사전을 뒤져 가사를 해석해 봤다. 별 감흥이 없었지만 노래 속의 통통 튀는 리듬은 여전히 내 마음을 콩닥거리게 했다.
한때 나 혼자만의 인기 차트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2주에 한번, 내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대학 노트에 기록하고 녹음까지 따로 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테이프를 나눠주곤 했었다. 언젠가 내 이름을 내세운 인기 차트 프로그램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는데, 지금 나는 영화감독이 돼 있다.
‘메모리스 아일랜드’는 과거의 극히 일부만을 기억하는 기억상실증 환자의 증상을 가리키는 의학 용어다. 바다가 기억의 전부라면 바다위에 떠 있는 섬 정도만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사실 우리 모두가 기억상실증 환자다. 나도 과거의 모든 기억을 머리 속에 넣고 살지는 않는다.
언젠가 조그만 배를 마련해 그 기억의 섬들로 가고 싶다. 하모니카의 선율과 드럼 소리에 키를 잡고, 청바지를 찢어 만든 돛을 올리고, 베이스 기타와 통기타로 노를 저어 가면 기억 저편에 있는 추억의 섬들이 반길 것이다. ‘메모리스 아일랜드’ 음반은 추억상실증 환자가 되어버린 나의 옛날을 찾게 해주는 작업이었다.
곽경택(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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