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한국군 내부 친(親)김구세력의 동정이다.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미군이 광복군계 장교들과 김구 측이 연결되는 것을 두려워 했다는 문서는 종종 발견된다.
다른 두 가지는 안두희와 우익 청년단체인 백의사(白衣社) 관계, 안두희와 미군 방첩대(CIC)와의 관계다.
백의사 관계 정보는 불확실한 부분이 많아 이것 역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설령 백의사가 암살사건에 개입했더라도 한낱 하수인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오히려 미군 CIC 장교와 백의사를 이끈 염동진과의 특수한 관계가 각별히 관심을 갖게 한다.
발굴 문서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안두희가 미군 CIC 요원이었다는 점이다. 김구 암살과 관련하여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은 항상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김구 암살사건이 특별히 화제가 되어 자주 거론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안두회와 이대통령과의 관계에만 초점이 맞추어졌으나 이번에 발굴된 문서에 의해 안두희와 미국도 특수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미국은 김구 암살에서 의혹의 대상이 될만했다. 김구의 통일운동은 미국이 현상유지정책 곧 분단고착화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는데 큰 불안요인이었다. 김구가 암살되었을 때 주한미대사관 주간보고서에 김구가 ‘무자비하고 파렴치한 기회주의자’로 묘사된 것은 미국이 김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안두희가 두 차례에 걸쳐 미 정보계통 중령을 만났을 때, 그 중령은 김구를 ‘암적 존재’로 표현하면서 김구를 살해해야 한다는 강한 암시를 주었다고 한다.
분명히 미국은 김구 암살사건과 관계가 있다. 안두희의 직속상관으로 안두희에게 김구 살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포병사령관 장은산도 군사영어학교 출신으로 ‘미국통’이었다. 미국은 암살사건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군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문서는 이 사건에 미국이 개입되어 있다는 또하나의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직접 이 사건을 계획하거나 사주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번 문서는 미국이 김구암살사건 진행과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막지 않고 오히려 방조했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아닐까.
송진우 여운형 암살사건도 그렇지만, 김구암살사건은 언론이나 르포라이터들이 주로 관심을 기울였고, 학계 연구는 적은 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김구암살사건에 대하여 깊이 있는 연구가 요구된다. 안두희가 소속한 서북청년회나 백의사 연구도 필요하지만, 이번 보고서가 작성된 1948년 11월경에서 김구가 암살된 49년 6월에 이르는 시기의 이승만 정권연구는 심도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 점은 이 시기 미국의 대한(對韓)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성격상 김구 여운형 등의 암살사건은 학계와 언론계가 공동의 숙제로 함께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 전모를 알고 있을 미국에서 ‘특급’ 자료가 나와야 한다. 4·19혁명 직후 이승만이 망명한 것은 미국 압력과 관계가 있다. 미국은 어떤 비장의 카드를 내놓았기에 그 고집센 이승만을 ‘설득’해냈을까.
서중석(성균관대 교수·한국현대사)
◆ 미국 CIC는 어떤 조직?
미국 육군 소속 방첩대로 한국에서는 방첩 활동 이외에 한국인 정치지도자에 대한 사찰도 맡았다. 좌익에 대한 견제 활동을 벌여 백의사와 같은 우익 테러단체들과 연관을 맺고 작전에 활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한국에서 철수했으나 요원들의 상당수가 그대로 남아 유사한 활동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