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함께 지내며 살림도 하고, 아이를 돌봐주시던 할머니가 얼마 전 불쑥 꺼낸 말 한 마디에 하늘이 다 노래졌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5년 넘도록 함께 살아 가족보다 더 가까워진 사이라 충격이 컸다. ‘진짜 할머니’보다 더 따르는 아이를 생각하면 대책이 서질 않았다.
혹시 서운하게 한 일이 있었나 자책도 해보고, 용기를 내서 정확한 사연도 물어보고, 새 사람을 찾느라 여기저기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그러다 다섯명의 ‘후보’들을 면접도 하고…. 이 모든 것을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 며칠을 정신없이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좀 더 계시기로 해 겨우 한숨 돌렸지만 그 와중에 겪은 마음고생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일하는 엄마들에게 살림과 육아를 도와주는 보모의 존재가 그렇게 큰 것인 줄 몰랐다. ‘보모 운이야말로 팔자소관’, ‘커리어우먼의 성공여부는 보모에 달렸다’는 시쳇말이 그렇게 마음에 와닿을 수 없었다.
‘뼈아픈 체험’을 통해 보모제도가 그 중요성에 비해 너무나도 주먹구구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우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 인맥을 총동원해서 소개를 부탁하는 것은 성공할 확률이 아주 낮다. 잘못될 경우 나중에 인간관계도 불편해질 수도 있다. 파출부 소개사무소를 기웃거려 봐도 보모의 신원을 보장하거나 기본적인 사전교육을 하는 곳이 거의 없어 실망스럽다. 심지어 “영어가 된다”며 불법 체류자를 권하는 곳도 있다.
헬프키즈(www.helpkids.co.kr), 푸른가족(www.enfamily.com), 놀이친구(www.irang.co.kr), 아이들세상(www.kidworld.co.kr) 등 인터넷 베이비시터 업체들은 이들에 비해 꽤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나름대로 믿을 만한 보모들을 소개해주는 YWCA 등 공신력있는 단체가 있지만 시간제이거나 신생아를 위한 목적에 한정되는 데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 외국의 젊은이들이 입주해 아이도 봐주고, 영어도 가르쳐주는 ‘오페어(au pair)’라는 제도는 활성화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좋은 보모를 구했다 해도 서로 가치관이 다른 엄마, 아빠와 보모가 어떻게 역할분담을 해야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까 하는 더 큰 문제가 남는다. 부부만 해도 생각이 다른데 또 한 명의 어른이 개입하면 아이는 자칫 어른들의 가치관 충돌에 희생될 수도 있다. 특히 보모가 나이 지긋한 할머니라면 더욱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소변을 가리는 것만 해도 “빨리 가려야 하는데…”라며 성급해하는 부모와 “때가 되면 저절로 한다”는 할머니는 대립하기 마련이다. “놀이터라도 좀 데리고 나가지 왜 저렇게 방안에서만 키우나” 하는 불만도 생긴다.
결국 부모와 보모가 아이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아이에게 바른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도록 끊임없는 대화를 하며 ‘최대공약수’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정옥희(37·서울 서초구 서초3동·Oki.Chung@geahk.ge.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