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바이올린의 전설' 아이작 스턴 22일 타계

  • 입력 2001년 9월 23일 18시 54분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이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수년간 앓아온 심장병이 악화돼 사망했다. 향년 81세.

스트라디바리를 선호한 대다수 현대 바이올리니스트들과는 달리 과르니에리 바이올린의 어둡고 감각적인 음조를 좋아한 그는 전속사인 소니를 통해 평생 100종이 넘는 음반을 낸 기록적인 연주자였다. 또 후대의 이츠하크 펄먼, 핑커스 주커만 등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발굴해 후원했고 1960년 ‘음악의 성전’인 뉴욕 카네기홀을 사무용 빌딩이 될 뻔한 위기에서 구한 음악계의 대부였다.

1920년 우크라이나 크레메네츠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10개월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장했다. 6세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8세 때 처음 바이올린에 손을 댔다. 16세 때 피에르 몽퇴가 지휘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함께 연주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23세 때는 카네기홀에 데뷔해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음악비평가 버질 톰슨으로부터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유대계인 아이작 스턴은 ‘아메리카-이스라엘 문화재단’을 통해 유대계 현악인의 발굴과 지원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대다수가 정경화를 밀었으나 스턴이 유대계인 주커만을 밀어 정경화 주커만 공동우승을 끌어냈다’는 설은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는 50년대 후반 재정난으로 팔려 개조될 위기에 처한 카네기홀을 구했다. 전 세계 음악인에게 호소하고 뉴욕시의회와 시장을 설득해 결국 뉴욕시가 500만달러에 카네기홀을 매입토록 했다. 카네기홀은 97년 대연주장의 이름을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으로 명명해 그에게 답례했다.

그는 97년 내한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장영주 장한나 요요마 등과 함께 갈라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그의 연주곡들은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과 81년 아카데미 영화상(다큐부문) 수상작인 ‘마오쩌둥으로부터 모차르트로-중국의 아이작 스턴’에도 남아 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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