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조병인/테러 막으려면 불편 뒤따른다

  • 입력 2001년 9월 24일 18시 31분


항공기 납치 자살테러는 지능범죄의 진수를 보여줬다. 범인들이 미국인들의 자랑거리인 첨단기술과 자유민주주의의 허점을 악용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을 이용한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개인의 자유가 확대될수록 테러범의 활동공간이 넓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첨단장비로 테러 대응체제를 갖췄지만 모두가 ‘감히 누가 그런 공격을 하겠나’라고 생각할 것을 알고 범행한 저들의 교활함은 한눈에 사냥감의 허점을 간파하는 맹수들의 감각을 연상케 한다. 범인들은 또 테러 전문가들이 생각한 테러방지대책의 허점을 정확하게 찔렀다. 미국은 1996년 이후 ‘대량파괴무기에 대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 많은 예산을 써왔다. 2000년에만 15억달러를 투입해 화생방 무기와 레이저 무기 등에 의한 테러에 대비했지만 범인들은 민간항공기와 탑승객 및 자신들의 목숨을 무기로 악용해 테러방지대책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이번 테러사건을 보고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도 테러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테러분자에 의한 요인 암살, 항공기 납치극이 발생할 가능성을 예견하고 있고, 내년 6월 월드컵대회가 테러의 기회로 선택될 가능성도 경고한다. 사람이 밀집한 곳에 독가스 세균 핵물질 등이 살포되거나 전문해커가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을 공격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공업단지, 화학공장, 정유공장, 원자력발전소, 원자력병원 등은 핵심 시설에 폭탄 몇 개만 투척돼도 대량파괴무기로 둔갑할 수 있다. 중요 기관의 컴퓨터시스템은 컴퓨터바이러스나 해킹으로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수원지에 독극물을 풀거나 도심 대형빌딩에 화재를 일으킬 가능성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대목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설마’하는 우리의 정서는 미국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최근 수년 사이에 일어난 각종 대형참사들은 모두 책임자들이 설마 했다가 자초한 인재들이다.

피랍 여객기가 서울의 대형 빌딩으로 돌진한다고 가정해 보면 우리의 취약점은 더욱 극명해진다. 자폭 의도가 명백해도 무고한 승객들의 생명을 외면하고 격추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도권에는 위성도시가 많아 격추시켜도 지상의 피해가 불가피해 격추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테러공격을 사전에 막을 방법은 없는가? 문제는 테러를 막기 위한 대책은 개인의 자유와 편의에 대한 양보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법집행 당국의 편의와 권한을 확대시키는 데 중점을 둬야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비난이 뒤따를 수 있다. 공항 검색을 강화하면 탑승객들이 불평할 것이고 절차를 간소화하면 보안대책에 구멍이 뚫렸다고 지적할 것이다. 테러범을 색출하기 위해 경찰의 체포 및 압수수색 권한을 강화하면 경찰국가 때도 그렇지 않았다고 비난할 것이다.

따라서 테러 방지대책을 추진하는 문제는 국민의 냉철한 판단과 양보가 전제돼야 하고 그 결단은 국민의 소관일 수밖에 없다.

조병인(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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