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마니山’과 ‘주류商’

99년 5월 당시 안정남(安正男·현 건설교통부장관) 신임 국세청장은 새벽에 민족 성지인 인천 강화군 마니산에 올라 백배(百拜)하면서 ‘조세 정의를 위해 이 나라에 성역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다음 날에는 국립묘지와 4·19묘소를 참배하면서 그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12일 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안 청장이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면서 직접 ‘고백’한 내용이다.

안 장관이 신임 국세청장이던 그 무렵 친동생은 주류도매업체인 서울 서초구 S주류상사에 ‘영업사장’으로 영입됐다. 동생이 영입된 뒤 S주류상사는 연간 매출액이 10억원대에서 65억∼70억원으로 7배정도 늘었다. 거래처도 50% 이상 늘었다고 한다. 25일 국회 법사위의 대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새로 밝혀진 내용이다.

물론 안 장관의 국세청장 취임과 안 장관 동생의 주류상사 취직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또 S주류상사의 해명대로 안 장관 동생이 밤낮 안 가리고 열심히 일해서 회사 실적이 크게 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세청은 주류도매업의 허가권을 쥐고 있는 곳이다. 또 주류도매상들의 영업 대상인 유흥업소들은 세금 문제 때문에 국세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안 장관의 국세청장 취임 직후 그의 동생이 주류업체에 영입된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침 이날 법사위 국감에서 한 야당 의원은 “검사는 성직자와 같이 고고한 자세가 필요하며 처자와 가족들은 숨을 죽이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세정(稅政)을 책임지는 국세청장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국세청장에 임명된 형이 ‘조세 정의의 의지’를 다지러 마니산에 올라갔을 때 그 동생은 주류상으로 갔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안 장관은 마니산에 오르기 전에 동생 집부터 들렀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이수형<사회부>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