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영화 모두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다. ‘나비’는 올해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젊은 비평가상’과 최우수 여우주연상인 청동표범상을 수상했다. ‘마리포사’는 2000년 미국 선댄스 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돼 당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영화.
두 영화는 이른바 ‘대박’을 터뜨릴 상업 영화와는 거리가 먼 작품들. 하지만 참을 수 없이 경박해지는 요즘 영화의 경향에 고개를 젓는 영화팬이라면 묵직한 주제를 다룬 두 편의 영화를 감상해 볼 만하다.
◇ "선생님은 빨갱이" 이념에 멍든 동심 '마리포사'
1930년대 내전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진 스페인의 한 시골 마을. 심한 천식으로 집에 있던 8세 꼬마 몬초(마누엘 로자노)가 학교에 입학한다. 몬초는 등교 첫날 바지에 ‘쉬’를 하는 바람에 놀림감이 되지만 노(老)선생 그레고리오(페르난도 페르난 고메즈)의 배려로 학교 생활에 차츰 적응해간다.
‘마리포사’는 그림 같은 자연을 배경으로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스페인 현대사와 인간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지성에 대한 굳은 신념이 담긴 그레고리오의 깊은 눈빛과 어린 몬초의 맑은 눈망울이 교차되면서 자유와 사랑, 우정 등 거대한 주제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초반 몬초의 눈은 가정의 울타리를 떠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경이로움으로 빛난다. 몬초는 그레고리오의 안내로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자연의 법칙과 지식을 흡수해나간다.
하지만 몬초의 행복한 세계는 오래갈 수 없다. 그가 사는 마을도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좌익과 보수 우익세력의 대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레고리오 등 은 우익 세력의 득세로 체포돼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레고리오와 몬초의 내면이 담긴 잊을 수 없는 눈빛의 ‘재회’가 이뤄진다. 몬초는 좌익인 아버지를 구하려는 어머니의 재촉에 “빨갱이”라며 그레고리오에게 돌을 던진다. 그레고리오는 평소 자신이 ‘참새’라고 불렀던 어린 제자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눈빛으로 시작된 감동은 그레고리오의 대사와 독백을 통해 가슴을 울린다.
“지옥은 저 세상에 있는 게 아니다. 증오와 잔인함, 그게 지옥이지. 자유를 잃는 것은 존재의 이유를 잃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맛본 자유는 마음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단다. 그건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보물이지.”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인 ‘타인들’과 ‘오픈 유어 아이즈’ 등을 연출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음악을 맡았다. 감독은 호세 루이스 쿠에르다. 6일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 잊고싶은 과거…알고싶은 과거… 로카르노 여우주연상 '나비'
가까운 미래의 어느 한국 도시. 이 곳에는 잊고 싶은 기억만을 지워주는 ‘망각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나비가 인도하는 이 바이러스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자 여행사가 이를 위한 여행상품을 내놓아 톡톡히 재미를 볼 정도다.
‘나비’는 이처럼 독특한 설정과, 이런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낸 영상 이미지의 힘이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 전반에 걸친 푸른 톤의 영상은 산성비 내리는 미래의 몽환적 이미지와 우울함을 강하게 심어준다.
이 영화는 바이러스를 찾아온 관광객 안나(김호정)와 안나의 안내를 맡은 임신 7개월의 여행사 가이드 유키(강혜정), 그리고 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택시 운전사 K(장현성) 등 두 여자와 한 남자가 서로의 상처를 알아가고 이를 치유하는 여정을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한 시선으로 펼친다.
세 명의 캐릭터는 상징하는 바가 뚜렷하다. 과거를 지우려는 안나와는 정반대로 K는 과거를 찾아 나서는 인물이다. 고아원에 버려졌던 K는 택시 안에 자신의 어릴 때 사진을 붙여놓고 누군가 이를 알아 봐주길 기대하며 손님들을 태운다. 유키는 과거를 지우려는 사람들의 가이드를 하면서도 이들이 잊으려는 아픈 과거를 대신 기억해 주려고 한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문승욱 감독은 “SF적인 설정 속에서 어른을 위한 우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모든 우화들이 결론에서 교훈을 말하듯 ‘나비’ 역시 마지막 부분에서 메시지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생명의 근원과 출발점으로 ‘물’의 이미지를 다루거나 ‘아기’를 희망의 상징으로 삼은 부분은 다소 상투적이기도 하다.
올해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와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각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김호정과 강혜정의 열연이 돋보인다. ‘나비’ 시사회장에서 장현성은 자기 소개를 하면서 “이 영화에 출연한 사람 중 유일하게 상을 못 탄 배우”라고 농담했지만 그의 연기 역시 호평 받을 만하다. 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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