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45분이나 늦게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유시어터’를 찾아갔을 때 유인촌(50)은 극장 앞의 대나무 정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는 중이었다. 항상 다소곳한 표정의 그의 아내 강혜경(42·중앙대 성악과 교수)도 그림 처럼 곁에 앉아 있었다.
‘카리스마의 연극인’, 군주(君主) 역할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유씨가 오페라 연출가로 데뷔한다. 아니, 연출가로서의 첫 데뷔를 오페라로 한다.
●성악가 부인 '외조' 소문 자자
한강오페라단이 9∼13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리는 푸치니 ‘라보엠’. 극장주, 연극배우, 탤런트, MC로서의 바쁜 생활에 한 가지 역할을 추가하는 셈이다. 아내 강씨도 이 오페라에서 귀엽고 앙칼진 여인 ‘무제타’ 역으로 출연한다.
“연출은 예순이 되어서야 손대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침 한강오페라단으로부터 제의가 왔고, 연출에 관한 평소의 생각을 한번 드러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요.”(유인촌)
유인촌과 오페라. 의아해하기 보다 고개를 끄덕거릴 사람이 많을 듯하다. 1997년 아내 강씨가 제과회사의 광고에 출연하자 “유인촌 부인이라며? 성악가라지?”라고 속닥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유씨가 그를 이탈리아로 유학 보내는 등 ‘외조’에 열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씨는 여인네들의 시샘의 대상이 됐다. ‘멋지고 잘난 남편이 그렇게 잘 도와주기까지…?’.
●"무대에선 까다롭고 무서워요"
“남편은 언제나 제게 좋은 후원자고 예술을 이해하는 동지죠. 연출가로서 어떠냐구요? 글쎄요…. 그런 줄 몰랐어요. 조금 까다롭고 무섭네요.”(강혜경)
강씨는 특별 대우 없이 다른 출연자들과 똑같이 땀흘리고 있다며 웃음 지었다.
연극인 유인촌이 보는 오페라는, 라보엠은?
“음악이 많은 역할을 하는 만큼 순수 연극적인 면에서는 빈 고리가 많아요.”(유인촌)
음악으로 이어가니 말이 많이 들어갈 수 없고, 극 전개의 논리적인 면에서는 구멍이 많다는 것. 유인촌은 그러나 ‘라보엠’ 자체는 심리적 요소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매력적인 극이라고 말했다.
●'연극적 빈 고리' 메우는데 주력
“원래의 극과 음악만으로 이어갈 수 없는 고리를 연출을 통해 창조해볼 생각입니다. 표정과 동작 하나에도 왜 그렇게 하는지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심리적인 성격을 표현하는 거죠. 처음엔 기존 오페라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를수도있을거예요.하지만 막이 내려지고 나서는‘정말마음에 와 닿는다’는 말이 들렸으면 하고, 또 그럴 걸로 자신합니다.”(유인촌)
그래서 약간 구성을 바꾼 부분도 있다. 원작에서는 남 주인공 로돌포가 친구들의 입을 통해 비로소 연인 미미의 죽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그가 미미의 죽음을 친구들보다 먼저 알아차린 것으로 해석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라보엠’은 철없다 싶은 예술가들의 얘기입니다. 그런 만큼 제게는 더욱 공감이 가는 세계지요. 한번 멋지게 꾸며볼 생각입니다.”(유인촌)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임금님’의 표정이 밝았다.
●한강오페라단의 '라보엠'은
한강오페라단의 ‘라보엠’은 호화배역과 다양한 무대연출로도 관심을 모은다. 정통 리릭 테너로 사랑 받아온 하반신 장애 테너 최승원(사진)이 남자 주연인 ‘로돌포’ 역으로 데뷔하고, 단장 박현준과 이강호가 같은 역에 가세한다. 종이꽃을 만드는 청초한 여인 미미 역도 소프라노 곽신형 이승희 김향란 김희정 등 실력과 인기를 검증 받은 막강 배역으로 꾸며졌다.
파리 거리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그린 2막에는 스포츠카가 무대 위에 등장하고, 4막 화가 마르첼로가 그림 그리는 장면에는 누드모델이 출연하는 등 볼거리도 풍성하게 제공할 계획. 이탈리아인 마르코 베레타가 지휘하는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는다. 9∼13일 오후 7시반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마지막날인 13일에는 오후 3시반 공연이 추가된다. 2만∼10만원. 02-2057-4441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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