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포럼]임희섭/시민단체 정치참여 말라

  • 입력 2001년 10월 11일 18시 24분


요즘 시민운동 진영 내부에서는 내년에 실시될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시민운동단체의 정치 참여 또는 정치 세력화에 관한 논쟁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시민운동단체들이 정치세력화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단순한 시민운동만으로는 시민운동이 목표로 삼아 활동해 온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개혁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데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처럼 시민운동도 개인으로서든단체로서든 직접 제도정치에 참여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에 대해 시민운동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는 시민운동의 본령을 벗어나는 것이라는 반론이 맞서 팽팽한 공방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제도정치에 함몰 본뜻 잃을 수도▼

또한 시민운동단체들이 선거 등의 제도정치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유럽의 녹색당처럼 직접 정당을 조직해서 참여할 것인지, 시민단체 또는 시민단체들의 연합체가 후보를 내어 선거운동을 지원할 것인지, 아니면 시민운동 출신의 후보들이 개인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것인지 등의 참여 방법을 둘러싼 논란도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시민운동은 그 자체가 일종의 정치활동이고 정치참여라고 할 수 있다. 시민운동은 국가 부문 내의 제도화된 정치과정이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책을 세우거나 집행하지 않는지 항상 감시하고 비판하는 동시에, 시민사회의 자율성 신장과 공익의 증진을 위한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필요하면 제도정치와 협력하기도 하는 ‘운동의 정치’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시민운동을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 또는 ‘제도권 밖으로부터의 정치’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도정치와 운동의 정치는 서로 ‘갈등적인 협력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시민운동은 항상 제도정치와는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쟁점과 상황에 따라 때로는 갈등적인 관계를, 때로는 협력적인 관계를 통하여 제도정치의 정치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시민운동은 특정한 쟁점에 관련하여 공론의 장에서 시민사회의 광범한 여론의 지지를 동원하는 ‘합의동원’의 방식으로 제도정치에 압력과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운동은 ‘제도권 밖으로부터의 정치’이며 또한 ‘제도정치와 구별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시민운동이 제도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은 두 가지만이 가능하다. 첫째는 시민운동 진영의 ‘개혁세력’들이 직접 개혁정당을 조직하여 제도정치권 내의 한 정당으로서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시민운동에서 활동하던 개인들이 개인적으로 제도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시민운동단체들이 스스로 시민운동조직을 표방하면서 동시에 제도정치에 ‘정치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는 것은 부적절한 참여방식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 경우 시민들과 유권자들은 시민운동단체가 정치조직인지 운동조직인지 시민운동단체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개혁에 더 효과적인가▼

오늘날 많은 시민들이 제도정치의 비능률과 대의기능의 후진성에 대해 실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야 정당들과 의회가 시민사회의 개혁 요구를 외면하고 정파적 이익 추구에만 급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시민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그만큼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도정치에 의한 개혁이 부진하면 할수록 시민운동의 개혁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는 상대적으로 더 높아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정치가 개혁에 소극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해서 시민운동단체들이 제도정치의 틀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것은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다. 시민운동단체들이 기존의 제도정치 속에 함몰되어 스스로 정체성을 잃는 것보다는 시민운동을 통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에 충실하는 것이 더 개혁의 추진에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임희섭(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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