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색 셔츠와 진한 청회색 슈트를 깔끔하게 입고 약속 장소에 나온 강인원. 살도 조금 붙고 혈색도 좋아서인지 마흔 중턱이라고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다섯살 때부터 ‘미술 천재’라는 칭찬을 듣고 자라서일까. 미적감각도 남다른 듯했다. ‘어린 왕자’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유리알처럼 투명한 감성을 지닌 그가 거듭되는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고 이렇듯 건강하고 멋지게 돌아온 모습이 반가웠다.
“사실 저 터프해요. 혈액형이 O형이라 그런지 다소 급하고 거칠죠. 얼굴이 작은 편이라 마르게 보이지만 174cm의 키에 체중이 68kg 정도 나가니 극히 정상이죠. 4년 전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제 영혼과 몸이 건강해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교회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포크음악계의 선배인 윤형주와 후배인 박강성의 권유로 신앙을 갖게 된 그는 매주 일요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 있는 온누리교회에 다닌다. 2년전 청주 주성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초빙된 후에도 주말이면 빠짐없이 서울로 올라와 예배를 드릴 정도니 신앙심을 짐작할 만하다.
“이런 것이 작은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후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도 터득했거든요. 제가 두번 이혼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아실 거예요. 그것 때문에 몹시 괴로웠지만 이젠 훌훌 털어버렸습니다. 앞으로 좋은 여자가 나타나면 정말 잘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지혜롭게 결혼생활을 할 자신도 생겼고요. 나이에 상관없이 이런 마음자세가 생기는 때가 ‘결혼적령기’ 아닐까요?”
20, 30대의 혼란기를 딛고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일까?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이는 그는 평일에는 대학과 청주MBC에 나가 일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봉사하는 현재의 삶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게다가 88년 이후 오랜만에 자신의 솔로앨범을 발표해 긴장되고 활기찬 나날이라고.
“예전이라면 꿈도 못 꾸었을 거예요. 음악인들이 보통 그렇듯 생활이 몹시 불규칙했거든요. 음악작업하느라 새벽에 잠들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일어나던 저였는데 학교 때문에 아침 8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출근준비를 합니다. 자연히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도 줄어들었고요. 파출부 아줌마가 오시지만 전체적인 집안일도 돌봐야 하고 중학교 1학년인 아들도 챙겨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청주 MBC <강인원의 작은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으니 정말 눈코 뜰새 없이 바쁩니다.”
4년전부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아버지로서 걱정이 많다고 한다. 아빠가 이렇게 바쁘면 따뜻한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 홀로 지내는 아들이 안쓰러워서다. 그동안 그의 아들은 미국 LA로 이민간 친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가족들은 오래전에 이민을 갔어요. 지금 어머니가 곁에 계시면 큰 힘이 될텐데. 생각 끝에 아들을 다시 미국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물론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대화의 시간도 많이 갖고 싶지만 쉽지 않아서요. 부자가 함께 지내는 것보다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내면에서 새로운 음악을 갈구하는 에너지가 넉넉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발표했다”는 강인원의 4집 <뉴스토리>. 새 앨범의 색깔은 포크를 토대로 장중한 록사운드를 접목시킨 ‘퓨전 포크’ 계열이다. 1억3천만원이란 거금을 투자하고 1년여 동안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탄생한 곡들이라 그런지 고급스럽고 깔끔하다. 타이틀곡 <너의 학교 앞 언덕 길가에> <잔소리> 외에도 리메이크곡 <매일 그대와> <비 오늘 날의 수채화> <제가 먼저 사랑할래요> 등 13곡이 수록돼 있다.
“홍보는 9월부터 하지만 앨범 시판은 11월 중순에야 이루어질 겁니다. 벌써부터 흥분되는 동시에 두렵기도 해요. 오랜만에 돌아와보니 가요계의 토양이 많이 달라져 있더군요. 굴 속에 갇혀 살다가 세상에 나온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같은 중견가수가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30대 이상의 팬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포크음악을 누군가는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4집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79년 이주원, 전인권 등과 함께 포크그룹 ‘따로 또 같이’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는 우리나라 포크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그대 모습은 장미>를 만들어 준 가수 민해경과 10년 넘게 우정을 나누고 있다. 민해경은 강인원을 ‘자신을 음악적으로 토닥거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보니 어느 때보다도 사운드와 음악적 구성 및 창법에 욕심이 나더군요.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갖고 있는 20여년간의 음악적 경험과 지식을 정리하여 가르치면서도 저 역시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혼후 음악과 담 쌓고 지낼 것이 아니라 외국에 나가 폭 넓게 음악공부를 하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도 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음악조류를 모두 섭렵하고 있는 강인원은 포크음악을 한다고 해도 컴퓨터를 모르고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못박는다. 컴퓨터의 첨단기법을 통해 비로소 완성도 높은 음악이 탄생되기 때문이다.
“포크가수라면 사회적, 문화적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시키는 위한 활동도 활발히 해야하죠. 정태춘씨가 주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음반사전심의제’를 폐지시킨 것이 좋은 예가 되겠군요. 전인권, 권인하, 김명상과 함께 그룹 ‘느티나무 언덕’을 할 때 ‘전국투어 환경콘서트’를 가졌는데 덕분에 ‘명예환경가수’라는 상을 받아 몹시 기뻤던 적이 있습니다”
새 앨범 <뉴스토리> 출시와 비슷한 시기에 가스펠 앨범도 발표할 계획인 그는 자신의 재능을 언제라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바칠 마음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은 물론 이웃과 사회를 사랑할 줄 아는 넉넉한 사람으로 거듭난 강인원. ‘그의 옆을 조용히 지켜봐 줄 따뜻한 반려자가 나타난다면 정말 아름답겠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성동아 4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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