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80년대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10여년간 진상규명을 요구해옴에 따라 99년 12월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이를 근거로 지난해 10월 9명의 위원으로 위원회가 구성됐다.
이 위원회는 1969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3선개헌 이후 이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국가,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 군, 경찰 등 공권력의 위법한 개입에 의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의문사 사건 78건을 접수하고 직권으로 조사 결정을 한 5건을 합쳐 모두 83건에 대해 올 2월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이중 84년 10월 청송교도소에 수감 중 의문사한 박영두사건, 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국군보안사령부(기무사령부 전신) 부산분실에서 조사받던 중 의문사한 임기윤사건 등 2건만이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사망한 것으로 인정됐다. 9건은 자살이나 단순사고로 밝혀져 기각되고 1건은 진정인이 취하했다.
이로써 83건 중 11건에 대한 조사가 종결됐다.
성과가 저조한 이유는 위원회 자체 권한에 한계가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위원회는 강제수사권이 없고, 조사대상자의 신병을 장기간 확보해 조사할 수도 없다.
또한 조사대상자를 소환할 때도 법적 구속력이 거의 없어 조사에 불응하는 경우도 많다. 위원회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동행명령장 발부가 전부.
하지만 이에 불응해도 최고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할 수 있는 실정이다.
위원회는 이같은 구조적인 한계속에서도 여러차례 숨겨진 진실을 밝혀냈다. 1973년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로서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던 중 투신자살한 것으로 발표돼 의문사 1호로 꼽히는 최종길 교수사건과 관련해 위원회는 최 교수의 간첩혐의가 당국에 의해 조작된 것임을 밝혀냈다. 최 교수의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사가 진행중이다.
위원회는 또 80년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진압군이던 공수부대원이 무고한 시민을 사살해 암매장했다는 사실과 90년대 학내 프락치공작의 실체도 밝혀냈다.
양 위원장은 “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을 통해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고 보다 투명한 사회에서 국민 모두가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특별법 규정상 내년 2월까지는 나머지 의문사 사건 70여건에 대한 최종결론을 내놓아야 한다.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