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이 음악책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밤하늘의 달에 음악을 비유한다면, 이 글은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손짓에 수 많은 표정이 있고 욕망의 몸부림이 있다. 그것을 인생이라고 번역해도 좋으리라.”
시인 출판평론가 방송인으로 활약중인 김갑수씨가 번다한 세속사 지친 현대인들을 음악이 흐르는 영혼의 쉼터로 초대한다. 그가 초대한 오디오 앞에 앉으면 아련한 순수의 기억이 하나씩 소환되리니.
첫사랑을 내리쳤던 손은 어느덧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욕과 사랑이 한 몸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며, 장중한 관현악의 선율에 몸을 맡기다보면 때론 생의 본질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깨달음이 번개처럼 가슴을 내리치기도 할 터.
“‘지금 이곳’이라는 낮은 땅의 시간이 항상 불만의 계절로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초월과 몽상의 갈망을 채워줄 어떤 무한의 광막한 영토가 필요하다. 음악과 오디오에 그 모든게 들어 있다.”
클래식 음악을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은 희귀본 음반 목록으로 채워진 음악 전문서나 클래식 편력을 뽐내는 감상기와는 다르다. 음악을 통해서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참다운 자아와 세상을 만나는 길”을 찾는 작은 구도의 기록이랄까. 다채로운 음악은 농밀한 시어의 몸을 빌어 오랫동안 독자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남긴다.
그는 “삶이 괴로와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고 했다. “새봄에 환멸은 많이 먹었니?” 자문했던 청춘의 회색 풍경, 고독의 독배를 들게한 실연담은 비단 그만의 것은 아닐 터. ‘메시앙 판타지아’에서 보이는 죽음의 문제, 리스트와 바그너 음악에 담긴 “병적인 연예감정”, 말러의 교향곡에서 성격결함이 안겨주는 불화의 문제 등 내밀한 삶의 상처를 역시 마찬가지.
김씨는 어둡고 무거운 음악의 풍경에만 눈길을 주는 것은 아니다. 팝과 록음악, 나아아 하드코어 뮤직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가하면, ‘겨울나그네’ ‘베티블루’ ‘조지아’ 같은 영화 주인공에 대한 살가운 대화도 시도한다. “왜 불쑥 불쑥 죽고 싶은지, 혹은 격렬하게 살고 싶은지” 답안을 던지지 않던 김승욱 소설의 주인공들도 말간 얼굴을 내민다.
클래식 음악은 화석처럼 고형화된 것이 아님을, 한 인생이 세상과 만나 화해하는 매개물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이같은 기쁨의 향연을 함께 나누고자 그는 초심자의 용기를 북돋는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집중해서 들어라, 그러나 헛다리도 짚고 틀려도 보아라.”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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