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유출' 영장기각의 의미]'영장 무리수' 법원서 제동

  • 입력 2001년 10월 23일 00시 31분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제주경찰서 임모 경사(56)와 한나라당 제주도지부 조직부장 김모씨(38)에 대해 청구됐던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것은 예상됐던 결과였다.

임 경사와 김씨의 혐의 사실이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보기에는 무리하다는 지적이 많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판례들이 있으며 법원도 이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검찰과 경찰이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돼 정치적으로도 영장 청구의 배경을 둘러싸고 첨예한 논란이 예상된다.

형법 127조는 공무상 기밀누설죄를 구성하는 ‘직무상 비밀’을 ‘법령에 비밀로 규정되었거나 비밀로 분류 명시된 사항 외에도 실질적으로 그것을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임 경사와 김씨의 혐의 사실은 임 경사가 김씨의 요청으로 ‘민주당 김홍일(金弘一) 의원이 모 기업체 스포츠단 사장 정학모(鄭學模)씨의 수행을 받으며 제주 서귀포시 제주호텔에서 2박3일간 휴양했다’는 요지의 경찰 내부 정보보고서를 김씨에게 유출했다는 것.

기본적으로 임 경사가 작성한 정보보고의 내용은 법령에 비밀로 규정된 사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혐의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보고 내용이 실질적으로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돼야 하는데 법원은 김 의원과 정씨의 제주 휴양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본 것.

한나라당 법률지원단장인 김용균(金容鈞) 의원은 21일 “제주도에 김홍일 의원이 왔다 갔다는 게 무슨 비밀이냐”며 김씨 등의 석방을 촉구했었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도 “국회의원이 어디서 누구를 만났다는 사실은 기밀이 될 수 없고 국민이 알면 오히려 더 좋다고 판단된다”며 “검찰이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부터 상고심까지 일관되게 무죄 판결을 받아 ‘공무상 기밀누설’의 기준을 세운 대표적인 판례는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62)의 감사결과 공개사건 소송이다.

이 전 감사관은 90년 5월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보유 실태에 관한 감사 결과를 언론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하고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그러나 법원은 “이씨가 언론에 공개한 부동산 보유실태는 대기업의 과세 실태에 대한 국민적 감시의 측면에서 공개가 필요한 것”이라며 “공개 자체가 정부나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만큼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명건·이정은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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