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안타까운 父情

  • 입력 2001년 10월 23일 18시 32분


아버지는 미친 듯이 무너진 학교건물 잔해를 파내려 갔다. 구조대원조차 ‘이미 깔려 죽었을 것’이라며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네게 아빠가 필요할 때는 꼭 네 곁에 있을 것이다.” 그는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아들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그러기를 하루하고도 14시간,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순간 환청처럼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이는 영화가 아니다. 3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88년 아르메니아 대지진 때 있었던 실제 이야기다. 비극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부정(父情)이다.

▷세상에 자식사랑보다 더한 것이 또 있을까. 목숨 있는 동안은 자식 몸 대신하기를 원하고 죽은 뒤에는 자식 몸 지키기를 원하는 게 부모 마음이다. 자식을 위해 몸을 던진 부모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도 많다. ‘부모 속에 부처가 들어 있다’는 옛말도 그래서 나왔을 터이다. 자식사랑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가시고기 수놈은 보름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알을 지키다 새끼들이 부화되어 나온 뒤 기진해 죽는다고 한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자식사랑은 이처럼 무조건적이고 본능적이다.

▷‘개구리 소년’들이 실종된 지 올해로 꼭 10년이다. “뒷산으로 개구리 잡으러 간다”며 대구의 다섯 어린이가 집을 나섰던 게 1991년 3월26일, 그들은 그 길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부모들은 생업을 내던진 채 자식을 찾아 방방곡곡을 헤맸고 전국적으로 ‘개구리 친구 찾기 운동’까지 벌어졌지만 허사였다. 이들이 지금 살아 있다면 19세부터 22세까지의 청년이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이 오죽했을까.

▷다섯 어린이 가운데 당시 아홉살로 막내였던 김종식군의 아버지가 그저께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실종되자 그는 회사까지 그만둔 뒤 5년 동안 아들 사진을 붙인 화물차를 몰고 전국을 다니며 전단을 뿌렸다고 한다. 올해 그의 나이 겨우 마흔아홉, 생전에 입버릇처럼 “죽기 전에 꼭 종식이를 찾겠다”고 말했다는 얘기이고 보면 아들 잃은 한(恨)이 그의 몸에 깊은 병을 심었으리라.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에게 ‘아르메니아의 기적’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일까.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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