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네피어시의 타마티어고교의 학교안내 팸플릿에는 항상 두장 짜리 보고서가 첨부돼 있어 학부모들의 눈길을 끈다.
‘타마티어고의 지역사회에’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학교의 학업 성취도, 교육수준, 교육과정, 재정상태 등에 대한 교육평가원(ERO)의 평가를 요약해 놓은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학생들의 요구에 맞게 효율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교육과정 설명이 분명하고 적절한 학습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있다. 학생과 교직원이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축구팀과 마오리 문화클럽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재정 및 자산 관리도 매우 건전하다.”
ERO는 평가서의 마지막에 “학운위가 보고 지적사항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알려주도록 요구하고 지역사회에도 향후 이행 계획서를 통보하도록 권장한다”며 “평가자료를 보고 싶으면 교장이나 학운위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굵은 글씨로 설명하고 있다.
이 학교의 리처드 로스코 교장은 “학부모에게 학교가 얼마나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솔직하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며 “학교의 실상을 알려주면 학부모들도 학교를 믿게 되고 학교도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의 모든 학교들은 교육부의 별도 독립기구인 ERO에 의해 낱낱이 평가받는다. 학교 학부모 정부로부터도 완전 독립이어서 공신력 만큼은 의심받지 않는다.
1989년 교육개혁과 함께 도입된 ERO는 학교운영위원회와 함께 뉴질랜드의 교육체계를 지탱하는 양대 축의 하나다.
학교운영 전반에 걸친 자율권을 학운위에 주는 대신 ERO의 학교교육 평가를 통해 엄격한 책임과 의무를 요구한다.
ERO는 초중등 교육을 평가해 교육부, 학교, 학부모에게 보고하고 감독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에 10개 지부를 두고 110여명의 평가사들이 회계감사, 학업 성취도 등을 깊이 있게 평가한다. 보통 3, 4년마다 학교를 평가하고 보고서를 낸다. 해당 학교 뿐 아니라 언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결과를 공표하고 매년 국가보고서를 10회 정도 내놓는다.
크라이스트처치시의 파파누이고교 데니스 피아트 교장은 “교장이 제대로 일하는지는 학생 성적으로 금방 나타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학부모들이 불신한다”며 “모든 것을 수치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다”고 말했다.
1998년 평가를 받은 학교의 78%인 467개교가 학운위 운영이 만족할만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106개교는 교장과 학운위 위원, 또는 학운위원들끼리도 마찰을 빚는 바람에 학교 경영이 부실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 1999년 평가학교 601개교 중 75%인 450개교도 재정운영이 건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레이엄 코크레인 ERO 수석고문은 “투명한 절차를 통해 공개하기 때문에 ERO 평가는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며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권고사항을 잘 이행하고 자구 노력을 기울여 훌륭한 학교로 바뀌는 것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호주는 학교별로 매년 ‘연례 학교평가 보고서’를 발행한다. 교장 교사 학부모 학생들로 자체평가위원회를 구성한 뒤 각종 평자자료를 수집 분석해 학기말에 12쪽 분량의 보고서를 낸다.
시드니의 킬라라고교는 6명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에 학생 2명과 학부모 1명이 참여해 ‘2000년 연례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는 등록한 학생 1209명 가운데 51%인 615명이 45개 외국어 배경을 가진 이민 가정 출신이어서 다양한 문화교류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출석률이 94%로 지역교육청이나 국가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또 졸업생 231명 중 83%가 대학에 진학했다.
이밖에 교육과정에서부터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교육, 장애학생교육, 학생복지, 마약교육, 직업교육에 이르기까지 1년 동안 학교에서 이뤄진 교육행사가 빠짐없이 자세히 기록되고 평가된다.
수전 마셜 교장대행은 “보고서는 주정부 교육부에 제출되며 교육부는 이를 근거로 학교 재정지원 등의 자료로 활용하기 때문에 매우 유용하다”며 “평가위원회는 증거 위주로 보고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허위 기재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뉴질랜드 교육평가원 코크레인 수석고문▼
“학교 교육의 수준과 질이 어떤지를 정확하게 파악해 보고하고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 학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교육 발전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 교육평가원(ERO)의 그레이엄 코크레인 수석 고문은 교육 분야라고 해서 온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ERO는 학생, 학교, 특정집단, 국가수준 등 4개 분야에 걸쳐 보고서를 작성하며 교육부장관의 요청으로 특별한 평가를 수행한다.
평가 결과 문제점이 발견되면 학교에 개선해야 할 사항을 권고한 뒤 6개월 뒤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다시 평가한다.
평가가 학부모→학운위→교장→교사→학생에게 교육적 영향력이 선순환을 일으키도록 하고 있다.
코크레인 고문은 “평가는 정확성과 신뢰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평가사들은 항상 준법정신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평가사들이 뇌물을 받아서는 안되며 항상 원칙과 정직, 불편부당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가와 진단이 정확해야 적합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만큼 학교나 평가기관 모두 정직한 자료를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학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질 높은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들이 명심할 것이 3가지 있습니다.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계획이 있고, 그런 계획을 실천하고 있는지 항상 자문해 봐야 합니다.”
코크레인 고문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와 서울대 등을 방문하기 위해 한국을 자주 방문할 정도로 한국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국제수학과학 비교연구 등을 보면 한국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계 학생들이 상위권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학문을 강조하는 유교적 문화와 가족제도가 한국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그는 “한국 초등학생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편인데 중고교나 대학교에 올라가면 떨어진다”며 “한국도 학교 교육 평가제도를 실시하면 교육 위기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학교별 자체평가委 '연례 보고서' 발행▼
호주는 학교별로 매년 ‘연례 학교평가 보고서’를 발행한다. 교장 교사 학부모 학생들로 자체평가위원회를 구성한 뒤 각종 평자자료를 수집 분석해 학기말에 12쪽 분량의 보고서를 낸다.
시드니의 킬라라고교는 6명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에 학생 2명과 학부모 1명이 참여해 ‘2000년 연례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는 등록한 학생 1209명 가운데 51%인 615명이 45개 외국어 배경을 가진 이민 가정 출신이어서 다양한 문화교류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출석률이 94%로 지역교육청이나 국가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또 졸업생 231명 중 83%가 대학에 진학했다.
이밖에 교육과정에서부터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교육, 장애학생교육, 학생복지, 마약교육, 직업교육에 이르기까지 1년 동안 학교에서 이뤄진 교육행사가 빠짐없이 자세히 기록되고 평가된다.
수전 마셜 교장대행은 “보고서는 주정부 교육부에 제출되며 교육부는 이를 근거로 학교 재정지원 등의 자료로 활용하기 때문에 매우 유용하다”며 “평가위원회는 증거 위주로 보고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허위 기재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웰링턴·시드니〓이인철기자>inchul@donga.com
▼영국/초중고서 전문대까지 학교수준 객관적 평가▼
영국은 교육기준청(OFSTED)이 초중고에서부터 4년제 대학을 제외한 전문대까지 각급 학교의 교육수준을 평가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1992년 창립된 교육기준청은 1993년부터 본격적인 학교 평가에 들어가 지금은 학교에 따라 4∼6년마다 평가한 뒤 교육부장관에게 그 결과를 보고하고 조언도 한다.
교육기준청의 주요 업무는 △교육의 질 △학생의 학업성취도 △학교재정 △학생의 도덕적 정신적 발달상태 평가 등 4가지.
감사관들이 평가할 때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뿐 아니라 노트나 연습장까지 살펴보고 학생들이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심지어 학생들이 교실에서 조용하고 예절바르게 행동하는지도 관찰 대상이다.
1만1471명의 감사관들이 전국의 2만5000여개 학교에 대한 평가를 담당하고 있다.
감사관은 등록감사관, 팀감사관, 평민감사관 등이 있으며 이중 교육경험이 전혀 없는 평민 감사관은 학교 경영, 재정, 학생들의 태도 등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주로 대학 교수, 교사, 교육행정가 등이 감사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대 6, 7명이 팀을 이뤄 3∼6일씩 평가작업을 벌인다.
학교들을 비교해서 평가할 때는 비슷한 수준의 학교를 고른다. 수준이 높은 학교와 낮은 학교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모든 평가보고서는 지역교육청, 학부모, OFSTED로 보내지고 홈페이지에도 학교별 평가보고서가 공개돼 있어 학부모들은 언제든지 학교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평가 결과 문제가 발견된 학교는 40일 이내에 과목별로 개선방안, 교사 직무교육 등을 담은 이행계획서를 만들어 OFSTED와 정부, 학부모에게 제출해야 하며 분기별로 결과를 모니터한다.
팀 키 감사관은 “학교 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주기적으로 평가함으로써 학교의 분발을 유도하고 있다”며 “평가 결과가 하나도 숨김없이 공개되기 때문에 학교도 교육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런던〓하준우기자>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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