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까지 유감표명 했는데"…한심한 한국외교

  • 입력 2001년 11월 2일 23시 47분


한국 정부의 서투르고 무사안일한 외교가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했다. 중국 정부의 한국인 마약범 신모씨(41) 처형을 놓고 외교통상부는 중국이 외교적 관례를 무시했다며 리빈 주한 중국대사를 외교부로까지 불러 항의하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까지 중국측에 유감을 표시했으나 결국 우리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중대 과실이었음이 확인됐다.

▽외교부의 통보 시인〓외교부는 2일 오전까지도 “중국 정부로부터 통보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가 관련 문서까지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접수된 문서가 없다”며 거듭 중국측의 터무니없는 자세를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뒤 외교부는 황급히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며 문서접수 사실을 뒤늦게 시인했다. 외교부는 그러면서도 “단지 판결문만 보내왔을 뿐이지 사형집행 사실을 우리에게 통보해 오진 않았다”며 “빈 영사협약을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특히 ‘중국 정부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사과까지 할 사안으로 보진 않는다”는 한가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책임소재를 묻는 질문에도 “감사관이 조사를 끝내고 귀국해봐야 알겠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사건의 전말〓중국 정부가 지난달 26일 주중 한국대사관에 한국인 신씨가 9월25일 최고인민법원의 판결에 따라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시에서 사형당했다고 알려오면서 이번 사건이 불거졌다.

중국측이 97년 9월 정모씨(68) 등 3명의 공범과 함께 체포됐던 신씨가 이미 총살형을 당했다고 알려오자 외교부는 “중국은 외교적 관례를 무시하고 신씨의 처형과 화장 사실은 물론 재판과정을 일절 알려주지 않았다”며 강력히 항의했다. 동시에 중국측에 아무 통보 없이 재판 및 처형을 한 경위를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방짜오(朱邦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일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대사관에 1심 재판장소와 일시를 고지(99년 1월)했으며 올해 9월25일엔 신씨의 사형확정판결을 선양(瀋陽)영사사무소에 보냈다”면서 “한국은 근거 없는 비난을 중지하라”고 반박했다. 같은 날 중국 외교부측은 주중대사관에 중국 정부가 한국 공관들에 보낸 공문을 제시했다.

▽허점투성이 영사업무〓이번 사건은 영사업무의 부실과 난맥상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는 지적이 많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한국인들의 사건 사고를 총괄하는 외교부 재외국민영사국의 영사과에서 일하는 외무관은 겨우 5명. 작년의 경우 한중간 인적교류가 180만명에 이르렀지만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영사는 4명이다.

게다가 영사업무는 외교부 내에서도 ‘귀찮기만 한 3D 보직’에 속한다. 재외공관에서 영사업무는 대부분 말직의 신참들이 떠맡는 게 관례처럼 돼 있고, 외교부 소속 외무관보다는 경찰청 등 다른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주재관에게 맡겨온 것이 이번 사건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임기응변식 대응〓나아가 이번 사건을 정부가 주요 외교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일단 위기를 모면해보자는 단편적인 처방만 내놓다가 사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고질적 병태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올 2월 한-러 정상회담에서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ABM) 조약 파문’이 일었을 때나 지난달 남쿠릴 수역의 한국어선 조업 금지 논란이 본격화했을 때도 정부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 없이 당국자의 소극적 해명으로 일관하다 사태를 키웠다.

<이철희·이종훈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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