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변호사, 정의의 편에 서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위해 열변을 토하는, 그런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지금 나는 어릴 적 꿈꾸었던 변호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어릴 적 그려온 그런 변호사가 되지는 못했다.
살다보면 어릴 적 꿈은 버거운 일상에 묻혀버린다. 삶은 전쟁이고 살아남기도 힘든 세상이므로, 하루하루를 돈벌이에 쏟기도 바쁘다.
▼돈대신 '나누는 삶' 선택▼
삶은 그만큼 무겁고, 세상은 그렇게 순진하지도 않다.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어릴 적 꿈은 기억 저 편에만 남아 있을 뿐이고, 잘 나가고 싶은 새로운 욕심이 내 눈을 가리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하루 종일 기업의 법률문제로 씨름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기업의 재산을 찾아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손해를 줄여줄 수 있을지에 매달렸다.
그러나 무료로 변론하거나 무료로 상담하는 일은 아주 작은 비중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나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의뢰인의 재산을 찾아주는 것도 정의라고 자위했다.
‘인디언 썸머’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변호사는 소속된 법률회사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국선 변호에 더 힘을 쏟았다. 그는 무작정 정의롭다.
이렇게 영화에서처럼 낭만적이진 않지만 현실에서도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선후배 변호사들은 아주 많다.
그 중 한 명은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시민단체의 상근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들이 일반적으로 받는 급여의 3분의 1도 받지 못하면서도 그는 늘 밝다. 그에겐 대부분의 변호사에게 주어지는 방도 없고 달랑 책상 하나만 주어졌지만, 그의 자리는 결코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그에겐 운전사 딸린 차가 없어 전철을 타고 법정에 오지만 그의 발걸음은 늘 당당하다.
내가 좋아하는 한 후배는 많은 돈과 명예를 줄 수 있다는 여러 법률회사를 뿌리치고 노동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사무실을 선택했다. 그녀의 사무실은 넥타이를 맨 반듯한 사람보다는 잠바 차림의 노동자들로 북적인다. 그녀는 언론의 큰 주목을 받는 커다란 기업 인수합병(M&A) 사건이나 외자유치 사건을 처리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녀는 늘 행복해 보인다.
지금은 종영되었지만, ‘당신이 있어 좋은 세상’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 크게 빛나지는 않지만 이 세상에 소금과 같은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대단한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무슨 ‘사’자 들어간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잃지 않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살맛 나고, 이런 사람들이 있어 정말로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어릴 적 꿈 잃지 말자"▼
나는 작년에 큰 법률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작은 법률회사를 차렸다. 물론 지금도 나의 주된 고객은 기업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생각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와 동료들은 각자 1년에 50시간 이상은 돈벌이와 무관한 공익적인 활동에 시간을 할애하자고 약속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 그리고 사회의 진보를 위한 공익활동의 비중을 점점 늘려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공익활동에 열심인 새로운 법률회사의 전범을 만들고자 한다.
새삼스럽게 어릴 적 그렸던 삶의 모습을 되살려본다. 그리고 꿈을 꾼다. 당신이 있어 좋은 세상을! 저마다 꿈을 가지고 있던 때가 있었다. 당신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는가. 당신이 있어 이 세상은 아름답고, 당신이 있어 이 세상은 살맛 나는가.
그것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꿈을 잃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소박하게 나누는 삶을 사는 당신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답다.
임성택(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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