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스타 요기 베라의 명언을 곱씹으며 양키스 선수들은 쓸쓸히 퇴장했다. 20세기에서 월드시리즈 26회 우승을 일궜던 ‘양키스 제국’은 이제 21세기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창단 4년째인 신생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넘겨주고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9회말 다이아몬드백스의 슬러거 루이스 곤잘레스가 때린 공이 뉴욕 유격수 데릭 지터의 머리를 넘어 사뿐히 그라운드에 ‘착지’하는 순간, 애리조나 선수들과 뱅크원볼파크에 모인 4만9000여명의 관중들이 꿈꾸던 기적은 현실로 드러났다. 월드시리즈 7차전의 끝내기 안타. 3-2로 승리의 여신은 다이아몬드백스의 손을 들어줬다.
뱅크원볼파크를 가득 메운 홈팬들의 광적인 환호 속에 다이아몬드백스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몰려들었고 너나 할 것 없이 뒤엉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24년간의 선수생활 중 처음 맛본 월드시리즈 우승의 흥분을 못이긴 노장투수 마이크 모건은 흐느끼며 홈플레이트에 입을 맞췄고 시리즈 MVP로 뽑힌 다이아몬드백스의 ‘원투펀치’ 커트 실링과 랜디 존슨도 붉어진 눈시울로 동료들과 포옹했다. 끝내기 안타를 때려낸 곤잘레스는 김병현의 얼굴을 보곤 와락 껴안으며 누구보다 가슴 조려 했을 마무리 투수의 시름을 덜어줬다.
반면 신화가 무너진 양키스의 벤치는 암울하기만 했다. 월드시리즈 4연패를 눈앞에 뒀던 조 토레 감독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고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폴 오닐은 자신의 현역 마지막 경기가 이렇게 끝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포스트시즌 51경기에서 6승 무패 24세이브, 평균자책 0.70으로 ‘무적’을 자랑했던 당대 최고의 마무리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는 첫 패배가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기록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했다.
선발 커트 실링(다이아몬드백스)과 로저 클레멘스(양키스)의 20승 투수 맞대결로 뚜껑을 연 5일 7차전은 97년의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였다. 6회 다이아몬드백스가 먼저 1점을 뽑자 양키스는 7회 마르티네스의 적시타와 8회 소리아노의 1점홈런이 터져 2-1로 역전. 역전 드라마가 펼쳐진 것은 다이아몬드백스의 9회말 공격 때였다. 선두 마크 그레이스의 안타에 이어 대미언 밀러의 보내기 번트 때 마무리투수 리베라의 송구 실책으로 무사 1, 2루의 찬스가 이어졌다. 벨의 희생번트 실패로 1사가 됐으나 톱타자 토니 워맥이 우익선상 2루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1사 만루에서 곤잘레스가 유격수 키를 넘기는 끝내기 안타로 다이아몬드백스에 우승 트로피인 ‘커미셔너 트로피’를 안겼다.
이로써 창단 4년째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역사상 가장 빨리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구단이 됐고 김병현은 한국인 최초로 우승 반지를 끼게 되는 감격을 누렸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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