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원색의 단순한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숲,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다. 잠시 후, 동물들은 모두 잠에서 깨어나 코를 킁킁거리며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갑자기 멈추더니 빙 둘러앉아 환호성을 지른다. 노란 꽃 한 송이 곱게 피어있었다. 봄을 알리듯.
노란 꽃을 빼면 온통 흰색과 검은 색 그림뿐인 ‘코를 킁킁’(루스 크라우스 글, 마크 사이먼트 그림, 비룡소)이라는 그림책이다. 흑백으로 겨울 느낌을, 노란 꽃으로 봄의 느낌을 잘 살려놓은, 표지마저 노란 그림책. 이처럼 그림책은 저마다 내용과 조화를 이루는 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내용에 따라 원색일 수도, 중간색일 수도, 흑백일 수도 있는 자기만의 색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원색을 좋아한다’는 이유를 들어, 내용과 상관없이 원색이 입혀진 그림책만 제공하는 것은 아이들의 다양한 체험을 차단하는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원색을 기피하며 중간색만 선호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원색이냐 중간색이냐가 아니라, 내용과 조화로운 색인가’ 이다.
그림의 모양과 표현 기법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판단해야 한다.‘아기 곰의 가을 나들이’(데지마 게이자부로 글 그림, 보림)는 아기 곰이 엄마와 함께 처음으로 연어를 잡으러 가서 느끼는 설렘과 혼자 힘으로 연어를 잡은 뿌듯함이 멋진 가을 풍경과 함께 목판에 아로새겨진 그림책인데, 한 칼 한 칼 새겨진 곰의 모습과 풍경이 처음엔 거칠게 다가온다. 그러나 내용에 빠져 읽다보면 거친 느낌은 어느새 사라지고 사랑스런 아기 곰과 아름다운 풍경이 가슴에 남는다.
그림책은 내용에 따라 다양한 색과 선, 질감으로 표현된다. 아기 곰이 연어를 잡는 비슷한 장면이 ‘베어’(존 쇤헤르 글 그림, 시공주니어)에서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마 곰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음으로 연어를 잡은 아기 곰의 뿌듯함과 엄마 곰이 사라진 뒤 배고픔에 허덕이다 연어를 잡아먹는 베어의 처절함의 차이다. 이 밖에도‘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슈타이너 글,뮐러 그림,비룡소)의 진지한 곰과 ‘털썩 데구르르’(나카노 히로다카 글 그림, 한림출판사)의 장난스러운 곰, 부드러운 털을 가진 ‘코를 킁킁’의 곰을 내용과 함께 비교해 보자. 그리고 느껴보자. 곰의 모습과 느낌이 제각기 다른 이유를.
조현애(부산대 사회교육원 ‘어린이 독서지도 과정’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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