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비경]청양 칠갑산/노란 장곡사…빨간 장곡사…

  • 입력 2001년 11월 14일 18시 37분


장곡사 경내
장곡사 경내
계절이 바뀌는 이 즈음. 이 땅 어디서고 새벽 안개의 비경은 어렵잖게 찾을 수 있을 터. 동트기 직전 칠갑산(충남 청양군) 찾던 길, 천안에서 23번 국도를 따라 남행하던 중 공주땅에서다. 무서리 눈처럼 골안의 가을걷이 끝난 논밭을 하얗게 덮은 그 위로 백묵가루처럼 농염한 안개가 내려앉아 온 세상이 무채색으로 덧칠된 묘한 풍경을 만났다.

안개 배경 두 번째는 36번 국도를 따라 청양으로 가던 중 고개 중턱 칠갑산휴게소(청양 12㎞ 전방)의 2층 전망대 앞에 펼쳐졌다. 게으른 아침해가 산줄기 너머에서 노닥거리는 사이 어둑한 칠갑산쪽 산 아래는 구름바다로 뒤덮인다. 예가 바로 ‘충남 알프스’, 막대한 산군의 집합소 청양땅이다.

열겹 스무겹,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겹겹이 포진한 산 산 산…. 골골마다 하얀 운무가 드리워졌다. 고개 넘자 단풍치마 곱디 고운 칠갑산 줄기가 정면 차창을 꽉 메운다. 노래방에서 구성지게 뽑아대던 그 노래의 그 산. 그러나 곡조만 알고 노래나 불렀지 정작 그 산이 이 땅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글쎄 얼마나 될지.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 ‘대치터널’ 안내판이 나타난다. 칠갑산 산허리 뚫어 공주∼청양 편히 오가게 한 이 터널. 편해지면 옛고생도 추억으로 남는다던가.

그 옛길은 ‘터널앞 500m’ 표지판 옆으로 이어진다. 옛길의 고갯마루(칠갑광장). 주차장과 터널 공사로 어수선하다. 그러나 정상행 산길(산장로·3㎞)에 접어드니 가을산 운치가 삼삼하다. 들리는 것은 발아래 낙엽 부서지는 소리뿐.

평평하고 널찍한 정상(해발 561m). 360도 탁 트인 시야로 충남의 수려한 산경이 거침없이 몰려든다. 수십겹 포개어 겹쳐 흐르는 산줄기의 행진, 산과 골을 바다처럼 뒤덮은 구름. 오른 이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이 정도 수고로 이 만한 감동을 얻을 곳, 과연 반도에 몇이나 될까.

36번 국도를 따라 장곡사로 향했다. 길가에는 가지가 찢어질 듯 주렁주렁 매달린 주황빛 감이 지천이다. 645번 지방도로 분기점. 이정표를 따라가면 칠갑산 자락의 장곡사다. 일주문을 지나니 샛노란 은행잎이 길을 반쯤 뒤덮은 예쁜 길이 객을 맞는다.

작은 골안 비탈에 구름 살포시 내려앉듯 조심스레 터잡은 장곡사. 12채 당우가 처마를 맞대고 올망졸망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드물게도 대웅전이 두 채인 이 절. 상하 두 대웅전 사이 비탈의 한 중간에 뿌리박은 거대한 느티나무와 감나무로 장곡사는 둘로 나뉜 느낌이다. 절 안에 또 절이 있는 형국, 거기엔 반드시 깊은 뜻이 숨어 있으려니.

이 가을, 주렁주렁 매달린 가지의 단감이 상대웅전 처마의 고색창연한 단청과 어울려 빚어내는 오묘한 색채의 조화. 고찰에서 배어나온 불법의 향취는 은은하기만 하다. 견물생심이라, 매달린 감을 따먹고 싶은 마음은 누구도 나무랄 수 없을 듯하다.

귀경길은 광천읍(장곡사 입구에서 24㎞ 거리)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는 코스.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의 젓갈상가(상점 28개소)는 옛 대천∼광천 도로(1.5㎞구간) 양편에 있었다. 방공호처럼 생긴 토굴에서 직접 젓을 삭혀 파는 광일토굴새우젓 주인 정영씨(32)는 “육젓(5월 잡이 새우젓)이 ㎏당 3만원선인 데 비해 추젓(7∼9월 잡이)은 5000∼1만5000원선”이라고 말했다. 서산 어리굴젓을 비롯해 온갖 젓갈이 여기에 있다.<청양〓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찾아가기:경부고속도로/천안IC∼23번 국도(대전방향)∼36번국도(예산 청양방향)∼칠갑산 옛길(도립공원 입구)∼645번 지방도 분기점∼장곡사∼분기점∼청양읍∼29번국도(홍성방향)∼614번 지방도(광천방향)∼광천읍∼서해안고속도로

:생태기행:승우여행사(www.swtour.co.kr)는 칠갑산 트레킹 패키지(당일)를 판매중. △왕복버스(18일)〓칠갑산∼장곡사∼외암민속마을(아산) 3만3000원 △버스·열차(20, 21일)〓칠갑산∼장곡사∼광천 토굴새우젓 장보기∼광천역∼서울역(오후 7시44분 도착). 3만9000원. 02-720-8311

◆ 식후경 - 충남 수산 : 조선 성종 수라상의 참게장 맛 재현

가을걷이 끝나 들판 비어갈 무렵 개천 물밑의 참게는 산란의 대업 찾아 바닷물 들고나는 강하구로 나가려는 걸음으로 ‘바빴다’. 조선 성종의 수라상에 올랐던 청양의 까치내 참게. 그러나 금강에 하구언이 생겨 바닷물 들고남이 끊긴 데다 농약으로 냇물까지 오염되는 참변에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간장에 담근 참게장의 깊은 맛은 잊혀지지 않아 끝내 금강참게는 까치내 근방의 냇가 양식장에서 부활, 다시 물밑을 오가느라 바쁘다. 명노환씨(54·충남수산 대표). 양식 착수 10년 만인 지난해 첫 참게장을 내놓아 박수를 받았던 주인공이다.

“늦가을 짠물이 닿아야 발정하는 참게는 강하구까지 가는 긴 여정에 대비해 에너지원으로 몸안에 장을 꽉 채우는데 참게장은 이런 가을게로 담가야 제 맛이지요.” 참게장은 7, 8번 간장을 끓여 부으며 석달간 숙성시킨다.

지천이 휘돌아 나가는 물도리동에 자리잡은 양식장(2만여평)은 참게장 가공공장과 식당이 함께 들어선 전원풍의 공간. 참게요리는 튀김(1마리에 5000원) 매운탕(3만원부터) 게장백반(1만2000원)등. 매운탕은 말린 배추잎을 넣고 끓인다. 항아리에 담아 파는 참게장은 12만원(10마리).

장곡사 입구 삼거리∼645번 지방도(장평 방향)/3㎞∼다리(주정교)/우회전∼1.7㎞지점에 입간판. 041-943-0008.

<청양〓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