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신분증뿐만 아니라 마약이나 총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요.”
중국에서 이런 얘기를 듣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중국에서는 돈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한국인 범법자들의 말을 처음에는 솔직히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차츰 생각이 달라졌다.
사흘만에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보여준 사람, 4000위안(약 64만원)만 주면 총을 구해줄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제의하는 한국인 범법자…. 눈으로 본 현실은 소문이 허튼 말이 아니라는 것을 믿기에 충분했다.
중국에서 ‘국적 세탁’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떠도는 한국인 범법자는 어림잡아 수천명. 이들이 위조한 중국신분증으로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은 정작 신분증 위조 자체보다 더욱 충격적인 일이었다.
비록 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범죄지만 한국과 중국간 외교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하고 궁극적으로는 전체 한국인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는 사안이기에 본보는 관심을 갖고 이를 집중 보도했다.
그러나 본보의 보도를 접한 외교통상부의 반응은 어이가 없었다. 대책 마련은 고사하고 실태 파악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신문 보도를 통해 알았다”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신고가 접수되기 전에는 마땅히 취할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해외 공관에 사람이 부족하고 교민에 일일이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행정력 부족을 이유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교민정책을 계속할 것인지 묻고 싶다.
이훈<사회1부>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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