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장소로 들어서는 김정씨는 서류봉투를 안고 있었다. 봉투 안에는 입시학원에서 뿌린 광고전단이 가득했다. 오후에 참여할 세미나에서 발표할 내용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요즘 입시학원들의 공략대상 연령 하한선은 초등학교 고학년. 외국어고 등 요즘 뜨고 있는 특목고를 가려면 수업내용이 어려워지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다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논리였다.
-아이가 고3이라고 들었는데, 시험 끝나고 화나지 않으셨어요?
“난이도 때문에 화가 난 건 아니구요, 교육부가 2002년 대입 출제방향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분노했습니다.”
-어떤 약속 말입니까?
“교육부는 그간 수능을 일종의 ‘자격시험’으로 만들고 나머지 여러 가지 합격판별 기준을 대학 쪽에 맡기겠다고 했어요. 그런 큰 그림 안에서 ‘쉬운 수능’으로 가겠다고 한 건데, 만점자들이 속출하고, ‘학업능력에 대한 변별력이 없다’는 문제가 제기되니까 원칙을 뒤집고 어려운 수능으로 간 겁니다. 그러면서도 시험 직전까지 난이도 수준이 2000년에서 2001년 사이라고 해서 수험생들을 더 큰 혼란으로 몰고 갔죠.”
-난이도 수준에 대한 사전지침이 그렇게 절대적인 판단기준이었나요?
“제 아이도 시험 직전까지 문제집을 계속 새로 사서 풀었어요. 쉬운 수능에서는 문제유형을 여러 가지로 익혀서 점수를 높이는 전략을 취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난이도가 높다면 그런 방식보다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합니다. 교육부 말만 믿고 입시를 준비한 아이들을 ‘너희들 왜 그렇게 공부 못하냐’는 식으로 희생양으로 만드는 건 말도 안됩니다.”
김정씨는 ‘입시’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한 복판에서 교육운동을 해 왔다. ‘공교육의 바다에 떠있는 사교육의 섬’이라는 강남. 그중에서도 그의 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전국 최고의 입시학원가라는 대치동타운의 끝자락 역삼동에 있다. 그곳에서 고교 3학년인 아들 동원, 중학교 3학년생인 딸 동녘을 키우는 일 자체가 김정씨에게는 결코 비켜갈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현장’이다. 그러나 자신이 교육운동을 한다고 아이들마저 똑같은 가치관을 갖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나름의 교육철학을 가졌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 또래가 겪는 갈등을 비켜가는 것도 아니다.
-아드님은 사교육 안 받았습니까?
“교육운동 하는 엄마 생각해준다고 과외도 학원도 안 다니던 애가 고3이 되는 겨울방학에 ‘이제부터 사회탐구, 과학탐구 학원엘 다니겠다’고 선언하더군요. 제 신념 때문에 아이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아이에겐 그 아이의 삶이 있으니까요. 겨울방학 6주동안만 과목당 수업료 15만원씩 여덟과목에 120만원이나 들더군요. 시험 한달전 쯤에야 아이를 설득해 겨우 학원을 그만두게 했습니다. 제 명분 때문이 아니고 학교수업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학교수업만으로는 절대 고득점이 나올 수 없다고들 생각하니까 중산층 엄마들까지 파출부를 해서라도 생활비를 초과하는 사교육비를 대는 형편 아닙니까?
“시험 끝나고 아이에게 도대체 학원 다닌 효과가 얼마나 되는 것 같냐고 묻자 ‘10% 쯤’이라고 답하더군요. 사교육의 효과가 전혀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교육열풍은 실제 효과와는 크게 관계가 없어요. 대입시험이 더 쉬워진다고 해도 가라앉지 않을 겁니다. 저는 일종의 광기(狂氣)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들이 자식 생각한다며 반(反)사회적인 불공정게임을 하는 거죠. 이 게임에서 빠져나오는 건 입시제도의 변화만으로도 안 되고, 개인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김정씨가 10년 동안 벌여온 교육운동을 돌이켜보며 가장 반성하는 대목은 ‘왜 선생님들과 수요자니 소비자니 하며 쓸데없이 대척점에 섰던가?’라는 것이다.
“그간 교원정년 단축이나 스승의 날을 학년말로 옮기는 문제, 촌지문제, 체벌문제 등에 대해 학부모운동단체와 교사단체가 첨예하게 의견을 달리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건 서로 대립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풀어가야 할 부분이예요. 그런 점에서 정부가 학부모들을 ‘교육소비자’로 강조해 교사들과 대립하게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체적인 수준으로 보아 학교가 학원보다 훨씬 양질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공교육정상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학부모들은 수업 수준 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학생들을 다루는 태도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습니다. 탈(脫)학교나 홈스쿨링이 꼭 학교의 수업수준하고만 관계가 있겠어요?
“지금의 학교문화가 민주적이지 못해 아이들의 변화와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건 아이들에게나 선생님에게나 똑같이 힘든 문제예요. (김정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딸아이가 자퇴하겠다고 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튀는 애’로 찍힌 딸의 힘겨운 학교 적응과정을 보며 그는 갈등을 느끼는 한 사람의 학부모일 뿐이다.) 하지만 불평하는 부모는 진짜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뭔지 그 얘기에 귀를 기울이나요? ”
김정씨는 최근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에서 한 엄마가 “아이로부터 끔찍한 상소리를 들었다”고 털어놓자 너도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말문을 연 일을 얘기했다. 엄마는 전투사령관처럼 온갖 입시정보를 파악해서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를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부모 위한 공부를 하는 듯’ 빈정대는, 관계의 어긋남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한국사회에서 번듯한 대학졸업장이 유산 물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와 부모 자식 간에 소통이 가능한 관계를 만드는 게 제일 귀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정씨는 고3인 아이와 하루에 한번이라도 눈을 마주치기 위해 강북의 교육운동 사무실에서 한강다리를 지하철로 건너와 아이에게 사과 하나라도 깎아주고서야 다시 운동 관련 모임장소로 가는 생활을 거르지 않았다. 시험 1주일 전에는 도통 언어영역에서 점수가 오르지 않는 아이와 함께 시험문제를 풀어보기도 했다. 팬터지소설 마니아인 아들이 속독(速讀) 버릇 때문에 출제지문을 제대로 읽지 않아 문제를 틀린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그였다.
김정씨의 하루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보일만큼 교육운동 관련 단체들 모임, 행사 참석 스케줄로 빼곡이 차 있다. ‘영화보러 갈 만큼의 여유’라고 생각한 것은 오해였다. 그 바쁜 틈을 비집고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겠다고 했던 이유는 “어린 시절 내 이야기같아서…”였다.
중고교 시절 그는 성적으로 ‘중간쯤’의 아이였다. 매주 쪽지시험을 보고 성적순으로 매를 때리는 담임선생님에게 2년 간이나 시달렸지만 부모님이 학교에 와서 말려주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연극도 잘 했지만 그런 김정씨의 자질이나 꿈에 주의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없었다. 스무살에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닌가 겁이 나서…’ 대학에 진학했다. ‘다시 생각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끔찍한 10대’를 건넌 그는 지금도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김정씨가 학부모 웹진 ‘같이하자’(www.haja.net/with)를 만드는 것도 이런 기억 때문이다.
떠도는 아이들이 어디 거리에만 있을까. 입시제도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자신을 끼워맞추며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 그런 입시전쟁으로부터 아예 배제돼 내팽개쳐진 아이들, 모두가 승자없는 게임의 어린 병사들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해봐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교육운동을 하면서 참 지치기도 합니다. 그래도 믿는 건 이거예요. ‘한 아이를 살리는 것이 우주를 살리는 것이다’라는 것….”
ryung@donga.com
▼전업주부에서 여성 활동가 변신▼
김명신에서 김정명신으로 김정씨는 자신의 자녀교육관을 ‘18년 프로젝트’라고 표현한다. 스무살 전까지만 내가 키운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 다음은? 아이와 친구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기 삶을 사는 것이다.
김정씨는 한국의 과열 입시교육을 풀어가는 하나의 고리가 ‘여자들의 자기 몫의 삶 찾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여성으로서 자기 직업을 갖기도 어렵고 자기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기도 어렵죠. 대신 찾게되는 방법이 ‘남편과 나’ 혹은 ‘아이와 나’의 동일시입니다. 자기 과제를 가족들에게 투사해서 풀어가는 거죠.”
전업주부 김명신이 교육운동가 겸 주부 김정명신으로 바뀌어온 지난 15년의 세월은 자신이 말한 ‘나의 길 찾기’의 한 실천이다. 84년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한 김정씨는 87년 연세대 조한혜정교수 등이 주도하는 ‘또 하나의 문화’(이하 또문)의 동인이 됐다. 당시 그는 두 아이를 데리고 씨름하면서도 재취업을 꿈꾸는 갈등많은 30대 주부였다. 전업주부의 고민을 담은 김정씨의 대 사회적 발언은 ‘30대 주부의 빛과 그림자’(무크지 ‘또 하나의 문화’ 제6호)로 표현됐다.
“취업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든 좋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파하는 사람이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 주변의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 말입니다.”
이웃의 같은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과 ‘독서모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던 그는 1990년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학부모연대’에 참여해 사무국장을 맡았으며 98년부터 부모성 함께 쓰기운동에 동참했다. 현재 ‘삶과 교육을 위한 대화와 실천’의 공동대표,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의 공동회장,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회 교육정책분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