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러운 여자 마음만큼이나 쉽게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패션 트렌드’가 아닐까? 지난 계절만 해도 부유함이 곧 미의 기준인 듯, 노골적으로 번쩍이는 금색 의상과 촌스럽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원색의 의상들이 쇼윈도를 가득 채웠는데 얼마전부터 디자이너들이 약속이라도 한듯 일제히 블랙 의상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블랙이 패션계의 이슈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패션 교과서에 나와있는 것처럼 ‘경기가 침체될수록 여자의 스커트는 짧아지고 색상은 어두워진다’는 패션의 법칙이 적용된 것일까? 디자이너들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검정 옷 한벌이면 다른 옷과 어렵지 않게 코디할 수 있고, 자주 세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불경기용 패션으로 검정 옷이 제격인 것은 사실이지만 요즘 나오는 블랙 의상들은 고급스러운 유행 경향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로 불리는 샤넬을 만든 코코 샤넬은 1912년 당시 유행하던 요란한 컬러 대신 아주 심플한 블랙 드레스를 발표해 혁명 같은 바람을 일으켰다. 이때 많은 패션 평론가들은 샤넬의 이 드레스를 ‘입은 사람의 인격까지 높여주는 우아한 유니폼’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기자 역시 어릴 때 본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 보석상점 앞에 서 있을 때 입었던 심플한 블랙 원피스가 헵번을 한층 더 고급스럽고 우아한 이미지로 만들었다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그 장면은 최근 한 국내 자동차 회사가 패러디해 광고로 만들기도 했다).
DKNY 홍보 담당자인 구희선씨 역시 블랙이 가진 파워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블랙 마니아다.
“블랙메일(Blackmail, 공갈)이나 블랙리스트(Blacklist, 요주의 명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검은색은 주로 부정적 의미를 갖고 있죠. 하지만 검정색이 패션에 쓰였을 때는 의미가 달라져요. 권위와 지적 이미지를 상징하는 패션 코드가 바로 블랙이지요. 그래서 저 역시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는 언제나 블랙을 입어요.”
기자 역시 블랙을 즐긴다. 블랙이 기자에게 어울리는 컬러냐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Yes’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만, 의상뿐 아니라 머리핀에서부터 구두까지 올 블랙으로 자주 코디한다. 특히 중요한 인터뷰가 있을 때나 패션쇼 등의 행사에 참석해야 할 때는 반드시 블랙 수트를 꺼내 입는다.
또하나, 남자친구와의 로맨틱한 데이트를 위해서도 종종 블랙을 선택한다. 여주인공 안젤리나 졸리의 섹시한 매력 때문에 더 유명해진 영화 <툼 레이더>를 기억하는지? 운동으로 다진 그녀의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강조하는 건 다름아닌 블랙 의상이다. 검정 옷을 입은 그녀에게선 요즘 젊은 여성들이 추구하는 ‘건강한 섹시함’이 느껴진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남자친구와의 데이트에서 블랙을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번 시즌에 블랙이 새로운 유행으로 등장했지만 그 유행을 따라잡기 위해 또다시 백화점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을 듯하다. 누구나 한벌쯤 심플한 블랙 수트나 블랙 풀오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른바 ‘최신 유행 스타일’로 블랙을 소화하려면 약간의 모험이 필요하다. 처녀적 입었던 오래된 빈티지 청바지에 샤넬풍의 블랙 재킷을 걸치거나 블랙 수트에 레이스 톱을 이너웨어로 매치해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는 것도 좋은 방법.
외출 준비를 위해 옷장 속에서 꺼낸 블랙 수트.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처럼 우아하게 연출할지 아니면 <툼 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처럼 섹시하게 입을지 그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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