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학고재화랑에서 열리는 ‘미의 여정, 김지하의 묵란’에는 김씨가 1980년부터 그려온 묵란 수천점 중 70여점이 선을 보인다.
이번 전시는 올 3월 김씨의 회갑 때 후배인 연출가 김민기, 국악인 김영동, 고서 전문가 김영복, 미술사학자 유홍준씨 등이 아디이어를 내 기획한 것이다. 김씨도 후배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씨는 반공법 위반으로 투옥됐다가 1980년 출감한 뒤 강원도 원주에서 요양하면서 묵란을 그리기 시작했다.
“감옥 독방에서 나오고 나니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듯한 환청에 시달렸습니다.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착각이었죠. 그때 생명운동을 하시던 장일순 선생께 난초 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난초를 치면서 여기저기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않고 한자리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배웠지요.”
김씨에게 묵란은 혼돈의 시대에서의 길찾기였다. 그가 바람에 흩날리는 ‘표연란(飄然蘭)’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난초를 치면서 바람과 난초를 어떻게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난초의 고결한 성품을 잡아내는 것, 그건 제 인생의 좌표였습니다. ”
김씨도 묵란에는 그린 사람의 정신이 배어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 역시 초기엔 길게 뻗치는 날카로운 묵란을 주로 그렸다. 한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엔 부드러운 짧은 잎의 묵란을 즐겨 그린다. 삶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난초를 처음 치기 시작할 무렵엔 의도필부도(意到筆不到), 즉 뜻은 저만치 가 있는데 붓은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의욕이 앞선 것이었죠. 그런데 요즘에 그 반대입니다. 여유라면 여유지만,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격정적인 80년대초의 묵란부터 넉넉함과 여유가 묻어나는 최근의 묵란을 통해 험난한 시대를 헤쳐온 김씨의 인생 역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02-739-4937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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