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수갈래 ‘학문의 길’ 당신의 선택은…

  • 입력 2001년 12월 7일 11시 18분


개미 전문가로 알려진 서울대 최재천 교수(생물학)는 어느 해 대학원생들이 너도나도 개미를 전공하겠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원인을 알아본 즉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가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면서 개미 세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이다. 서울대 주경철 교수(서양사학)가 ‘이슈투데이’ 사이트에 올린 경험담도 비슷하다. 입학 면접시험 때마다 “역사학 책을 읽은 것이 있느냐”고 물으면 영락없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주교수는 대중의 역사관을 좌우하는 나나미의 역사 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그 글을 썼지만, 학생들의 진로 선택과 관련해 한 권의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레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 ‘망치를 든 지질학자’ ‘경영학 100년의 사상’은 그런 의미에서 골라본 책이다. 이 책들은 처음부터 진로지도용 수험서로 기획된 것은 아니다. 지루할 수도 있고 고등학생 수준에서 너무 어려운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입문자로서 학문의 세계를 곁눈질해 볼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둔다.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를 집필한 7명 모리스 아귈롱, 피에르 쇼뉘, 조르주 뒤비, 라울 지라르데, 자크 르 고프, 미셸 페로, 르네 레몽은 모두 프랑스의 쟁쟁한 현역 역사학자들이다.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가 그저 그런 내적 고백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냉철하게 자기 개인사를 기록하며 ‘에고(ego)-역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예를 들어 조르주 뒤비는 일찌감치 역사가가 되도록 운명지워진 것같이 행동하는 동료들과 그런 운명이 찾아오지 않은 자신을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리옹대학 시절 그가 빠져든 것은 역사학이 아니라 지리학이었다. 그는 지리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인구학, 토양학, 경제학, 기후학, 식물학까지도 정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데니오 교수의 부임으로 그는 “역사란 죽은 역사, 단지 사건의 맥락들을 차갑게 재구성해 놓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삶에 대하여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임을 배웠다. 데니오 교수는 그를 중세연구가로 만들어놓았다. 그 밖에도 아귈롱은 자신이 신봉하는 공산주의가 19세기 말 역사 해석에도 적용 가능한지 시험해 보기 위해, 미셸 페로는 현대 페미니즘에 몰두해 역사가로 이름을 날렸다.

장순근 박사(한국해양연구소 극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의 ‘망치를 든 지질학자’는 화석학과 지질학에 대한 입문서다. 지층과 화석 관찰 방법, 야외 지질조사와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화석 발굴에 얽힌 에피소드 등이 실려 있어 지질학이 무엇을 하는 학문인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을 보니 지난해 출간한 이융남 박사의 ‘공룡대탐험’(창작과비평사)이 떠오른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이와 같은 입문서들이 다양하게 나와야 할 것 같다. 특히 공학분야는 대중적인 입문서가 크게 부족하다. 그나마 한국공학한림원(회장 이기준 서울대 총장)과 김영사가 함께 내기로 한 ‘대중을 위한 공학 시리즈’에 기대가 크다. 내년 3월부터 ‘21세기를 지배하는 10대 공학기술’ ‘세계가 놀란 한국반도체 산업발전사’ ‘한국을 바꾼 위대한 엔지니어들’과 같은 책이 나온다.

미야타 야하치로가 쓴 ‘경영학 100년의 사상’은 마지막 순간까지 선택을 고민했다. 지난 100년 경영학 이론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고전 30권을 소개한 경제·경영 입문서지만 경영학에 문외한인 독자가 흥미롭게 읽을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취직이 무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경영학을 선택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 학문으로서 경영학의 매력을 소개하는 책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국인 스튜어트 크레이너가 쓴 ‘경영의 세기’(더난 펴냄)와도 짝이 맞는 책이다.

지면 부족으로 자세히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인문, 사회, 자연, 공학 등 각 분야 최고의 국내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지식을 최대한 쉽게 풀어 쓴 ‘세상을 보는 눈 1, 2’(이슈투데이 펴냄)도 진로 선택에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 아귈롱 외 지음/ 이성엽 외 옮김/ 에코 리브르 펴냄/ 472쪽/ 1만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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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를 든 지질학자/ 장순근 지음/ 가람기획 펴냄/ 280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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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100년의 사상/ 미야타 야하치로 지음/ 김영철 옮김/ 일빛 펴냄/ 500쪽/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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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미 주간동아기자 > khmzip@donga.com

◇ Tips

세상을 보는 눈

서울대, 고대, 한양대, 충남대, 한국고등과학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포스코경영연구소에 재직하는 14명의 교수 혹은 연구원들이 '지식의 대중화'를 위해 쓴 책이다. 1권은 역사, 철학, 예술, 사회, 정치, 경제, 기업을 보는 눈을 다뤘고 2권은 수학, 물리학, 생명공학, 디지털혁명, 메카트로닉스, 인터넷을 주제로 했다. 수험생들의 논술과 심층면접 준비를 겨냥해서 만든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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