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과연 그것만이 정답일까. 암투병 중인 한만청 전 서울대병원장이 최근 발간한 책에서 ‘암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그 놈과 친구가 되라’고 충고했듯이 어쩌면 상실과 결핍을 극복하겠다고 막무가내로 싸우는 것보다 오히려 그것을 감싸안고 어루만지는 것이 약이 되는 수가 있다.
특히 자신의 선택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고통이라면 어차피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껴안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위대한 체념’으로 끌어안는 것이 운명이다.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 ‘분노의 주먹’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주인공 제이크 라모타는 50년대 미들급 복싱의 핵주먹. 원제가 말해주듯이 ‘성난 황소’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는 편집광적인 성격으로 마피아, 친구, 가족으로부터 줄곧 외면 당하고 파탄에 이른다. 화려했던 전성기를 끝내고 삼류 클럽의 뚱보 익살꾼으로 전락한 전직 챔피언. 허름한 술집의 남루한 인생으로 몰락한 그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결국 ‘위대한 체념’ 그것이다.
개봉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영화사의 고전으로 꼽히는 마틴 스콜세즈의 대표작. 여기에 로버트 드니로와 조 페시의 악마적인 연기가 영화의 온도를 내내 뜨겁게 달군다. 스포츠 영화 중에 ‘영화사의 위대한 걸작’으로 불러야될 작품이 있다면 ‘분노의 주먹’만이 유일하다. 이것은 복싱 영화지만 그 분류표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영화의 시작부터 인상적. 사각 링의 로프에 의해 4등분된 흐릿한 화면에서 주인공이 섀도우 복싱을 하고 있다. 그것으로 이미 영화의 주제는 선명해진다. 결국 ‘자기와의 싸움’. 물론 그것은 스포츠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련과 극복’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상실과 결핍에 대하여 오로지 자신만이 냉엄하게 승부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것이 필생의 장벽이라면 결국 그것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의 본질을 오프닝 신은 인상적으로 말해준다.
(정윤수·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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