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두배나 오래 걸렸다. 녹음을 다 마친 10곡을 모두 버리고 다시 녹음했다. 그 이유는 ‘변화’의 폭에 대해 고민이 많았기 때문.
새음반의 타이틀을 ‘시나브로’라고 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시나브로)’ 변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래서 타이틀곡 ‘사랑해도 될까요’는 박승화 이세준으로 이뤄진 두 멤버의 설렘 가득한 보컬와 수줍은 가사, 유려한 멜로디와 절제된 선율 등 기존 ‘유리상자’표 발라드와 다른 게 없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곡이 이전보다 밝아졌다는 점이다.
“5집쯤 되니까 안팎으로 변화에 대한 요구가 밀려왔어요. 변화를 해보고자 시도한 10곡의 작업을 마친 어느날 ‘이건 우리가 아니다’라는 생각에 모두 버렸어요. 변화는 억지스러워선 안되잖아요.”
‘유리상자’같은 발라드 가수들에게 크고 작은 변화는 일종의 모험이다. 이미지가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에 팬들이 변화를 낯설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리상자’는 “팬들의 이탈을 걱정한 게 아니라 우리의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을 만큼의 변화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최성원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제주도 푸른밤’은 ‘유리상자’의 이번 변화가 어떤지를 잘 보여주는 노래다. ‘제주도 푸른밤’이 경쾌하게 리메이크돼 있어 ‘유리상자’특유의 해맑음과 온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 노래는 타이틀곡 못지 않게 방송을 타고 있는 중.
‘유리상자’는 1997년 데뷔 이래 전국 곳곳의 라이브 무대를 통해 고정팬을 확보한 그룹. 음반을 낼 때마다 아예 라이브 일정을 미리 공개한다. 이번 공연은 21∼31일 서울 정동문화예술회관에서 마련하고 특히 28일에는 200회 무대를 맞는다. 02-780-9907
이들의 공연은 볼거리없이 ‘들을 거리’가 풍성하다. 노래만으로 무대를 이어가고 즉석에서 신청곡을 불러 주는 고정 코너도 200회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유리상자’는 길거리에서도 알아보는 이가 드물다. 매니저가 “매번 20만∼30만장 나가는데도 길거리에서 사인 요청이 없다”고 투덜거릴 정도다. 그래도 공연은 거의 매번 매진 사례다. 평범한 외모에 카리스마도 없는데 팬들이 몰려오는 이유가 뭘까.
“화려함은 끝이 없습니다. 매일 먹는 밥이 화려하게 양념이 쳐져으면 주식(主食)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처럼 담백한 평범이 우리 그룹의 생명이지요.”
<허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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