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신 차관이 청와대에서 국가 사정 업무를 담당하며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그 직위와 관련해 돈을 받은 사실이 최종 확인되면 현 정권의 도덕성은 뿌리째 흔들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진씨의 정관계 로비 내용이 담겨 있다는 ‘진승현 리스트’가 일부나마 사실로 확인됨으로써 ‘진승현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관계 로비의혹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 차관은 진씨 측에서 돈을 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신 차관에게 돈을 전달해준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당료 최택권씨가 돈을 전달하지 않고 착복, ‘배달사고’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씨가 10일 새벽 갑자기 행방을 감춰 정확한 진상규명은 다소 늦춰지거나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은 최씨의 진술에 상관없이 진씨의 돈이 신 차관에게 도달했다는 정황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해 수사 당시 신 차관이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된 단서를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사는 “지난해 진씨가 최씨 등을 통해 신 차관과 접촉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전북 김제 출신으로 민주당 중앙당 비상근 위원장과 정책위 부실장 등을 지냈으며 권력 핵심인사들과 전 현직 검찰 고위 인사들과도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 차관은 지난해 11월 진씨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수사팀 검사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수사상황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신 차관의 전화 때문에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11일 진씨의 신 차관에 대한 1억원 제공 사실을 부인한 데 대해 일부에서는 검찰의 시간을 벌기 위한 고육책이었으리라는 관측도 있다. 현직 차관에 대한 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유럽을 순방중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12일 귀국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러나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아무리 고위직이 관련돼 있어도 지금 상황은 확인된 혐의를 전면 부인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함으로써 신 차관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의 본격 수사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진씨가 신 차관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함으로써 그동안 닫혀 있던 진씨의 입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진씨가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자포자기 심정에서 폭로성 진술을 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따라서 진씨는 이미 지난해 4·13 총선 당시 돈을 준 여야 정치인들의 명단과 돈의 액수, 돈 전달 과정 등에 대해서도 진술했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 수사는 신 차관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와 함께 여야 정치인들의 금품수수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