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을 정치인들에게 맡겨 두면 그들이 원하는 개혁만 추진하게 된다. 현재 정치권도 비례대표제 개선, 예비선거 도입, 당권-대권 분리 등 자신들의 정치이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에는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치비용 결국 국민부담▼
그러나 정치개혁의 시작과 마지막이라는 정치자금의 투명성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돈 선거의 차단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돈 선거로 인한 막대한 비용을 결국 국민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책임져야 하는 비용은 단순히 선거에 투입된 정치자금에 그치지 않는다. 대규모 정치자금의 유통으로 파생되는 모든 유형의 부패에서 발생되는 정치적, 사회적 비용도 궁극적으로 국민이 지불하는 것이다.
돈 선거가 부패의 온상이 된 원인은 한국부패의 독특한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대규모 부패는 막대한 규모의 정치자금을 필요로 하는 정치권력과 국가주도형 성장모델을 통해 비대해진 관료, 그리고 대기업 사이에 형성된 공생관계에서 발생한다. 즉 권력형 부패가 주를 이룬다.
정치인, 관료, 기업인의 삼각 교환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권력형 부패의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불거진 ‘진승현 게이트’다.
MCI 코리아 대표인 진승현씨가 지난해 4·13 총선에 출마한 다수의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대규모 선거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MCI측은 정치자금을 제공한 대가로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을 유관 감독기관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이처럼 부패를 매개로 한 ‘먹이사슬’의 정상에는 정치권이 군림하고 있고 정치권은 정치자금을 통해 기업 및 관료와 부패고리를 이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치권이 돈 정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난 1년 동안 동아일보와 연세대 국제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정치자금 실사는 고비용 정치구조와 정치자금의 부패고리를 해체하기 위한 개혁의 방향을 몇 가지 제시해 주고 있다.
첫째, 돈이 선거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돈만 있으면 당선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정치인의 정치자금 모금을 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번 공동조사 성과의 하나는 현 제도하에서도 돈의 역할이 과장되게 인식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우선 돈의 영향력에 대해 후보자의 주관적 평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선자는 돈이 아닌 개인적 능력으로 승리했다고 믿고 싶어하고, 사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낙선자는 반대로 선거패배의 원인을 전적으로 선거자금 탓으로 돌렸다.
객관적인 분석을 해보면 돈의 영향이 그 동안 인식되어 온 수준에 비해 상당히 제한적임을 알 수 있었다. 16대 총선에 출마한 후보가 자신의 득표율을 1% 올리기 위해서는 선거자금을 적어도 20% 더 지출해야 했다는 것이 공동조사팀의 분석 결과였다. 돈의 실제 효과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만 후보자들도 막연히 돈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손익계산에 따라 선거자금을 지출할 수 있게 된다.
▼지출통제 당분간 유지를▼
둘째, 지출 부문의 통제를 당분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선거 자금의 68.1%를 조직관리비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선거비용의 증가를 유발할 수 있는 규제완화에 대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광고, 홍보 등 선진적 선거방식의 효율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중장기적으로는 지출항목 통제의 필요성이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정치자금 모금에 대한 규제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 정치자금 모금의 제도화를 위해 마련한 후원회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25.7%에 불과하고 나머지 자금은 개인자금(55.4%) 당지원금(18.8%) 등 투명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로로 조달되었다. 따라서 투명성 규제를 비공식 통로로 확대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모종린(연세대 국제학연구소 소장·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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