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운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주역(周易)’이다. 주역은 삼라만상을 음양 이원으로 설명해 그 으뜸을 태극이라 보고 거기서 64괘를 만들어 이에 맞추어 철학 윤리 정치상의 해석을 덧붙인 고전이다. 지극히 심오하고 철학적이지만 많은 보통 사람들에겐 그저 ‘사주팔자’ ‘오늘의 운세’ ‘점괘’ 등과 동의어로 취급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한가.
주역 해석의 1인자로 꼽히는 대산 김석진(大山 金碩鎭·73)옹을 만났다. 19세에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54년 간 주역에만 파묻혀 살아온 김옹. 그가 자신의 주역 인생을 회고한 ‘스승의 길, 주역의 길’을 출간하고 이를 기념해 15일 오후 3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역 강연회를 마련한다. 이 책은 그가 스승인 야산 이달(也山 李達·역사학자 이이화씨의 아버지·1889∼1958)선생으로부터 주역을 배우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살아론 주역 인생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주역의 대가 김옹은 과연 이 어수선한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고 있는지, 그의 인생과 주역의 세계 등이 궁금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방문화진흥회를 찾았다. 김옹이 매주 두차례 주역 강의를 하는 곳이다.
-주역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 실생활에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주역은 우주의 변화, 삶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피흉취길(避凶取吉), 흉을 피하고 길을 얻는 것이죠. 앞을 내다보면서 슬기롭게 대처하자는 겁니다. 그 예측의 범위는 하루일 수도 있고 한달, 1년, 10년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운세일 수도 있고 국가의 변란에 관한 것일 수도 있죠. 물론 기본적으로 괘 풀이를 잘 해야 하지만 그럴려면 학문적인 지식과 정신적 수양이 있어야 합니다.”
-내년 한국의 운세가 궁금한데요.
“아직 내년 점괘를 보지 않았지만 내년엔 선거가 있어 시끄럽겠죠. 그러나 한국 전쟁이나 세계 대전과 같은 큰 변고는 없을 겁니다. ”
-대선 얘기가 나와서인데 누가 될 것 같습니까.
“제가 주역을 한다니까 선거 때마다 사람들이 물어옵니다. 그러나 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런 것 공연히 떠들고 다니면 실없는 사람만 됩니다. ”
-선생님께선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발설하지 않을테니 제게만 살짝 말씀해주세요.
“물론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 대략은 보입니다. 그러나 이기자께도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기자가 대권을 꿈꾸는 사람들을 거론하면서 몇 번 더 물었지만 김옹은 끝내 실명을 언급하지 않았다. “정신을 모아 괘를 얻으면 결과는 정확히 나옵니다. 그러나 스승이신 야산 선생님은 제게 점괘를 발설하지 않는 인내력을 키우라고 하셨어요. 저도 처음엔 입이 근질근질해서 혼났는데 이제는 참을 수 있습니다. ”
-보통 사람들은 주역을 사주팔자 점 보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그리고 주역과 점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분명 주역은 점괘를 보는 겁니다. 주역은 1년365일이나 사시 등 기본 수(數)로 점을 봅니다. 흔히 쌀이나 동전 같은 것으로 보는 점과는 다릅니다. 점은 점 책을 보면 되고 사주는 사주 책을 보면 됩니다. 이것을 보통 주역이라고 하는데 그건 주역에 근거를 둔 것일 뿐 주역은 아니예요. 옛날엔 정치하면서 점을 봤는데, 우선 내 마음에 궁금한 생각이 들지 않으면 점을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일 궁금하다면 좌우의 신하에게 물어보라, 그 다음도 궁금하면 백성들에게 물어보라, 그래도 모르겠거든 점을 보라고 했어요. 그냥 아무 때나 점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역을 너무 사소하게 점 보는 것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주역에 대한 김옹의 뚜렷한 소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소소하게 개인의 사주나 점괘에 연연하지 않는 것, 함부로 천기를 누설하지 않는 것, 그것이 주역을 대하는 일종의 예의라는 말이다.
-한학을 공부하시다 19세부터 야산 선생 밑에 들어가 주역과 서경 시경을 공부하셨는데, 어떻게 주역에 몰입하기 시작하셨는지요.
“소학교를 졸업하니 할아버지께서 인기아취(人棄我取), 즉 남들이 버리는 것을 취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한문을 계속 공부하라는 뜻이었어요. 한문 배운 것이 나중엔 좋을 거라구요. 그래서 다시 사서를 배우고 주역을 접하게 됐습니다. 매력을 느꼈죠. 그래서 열아홉에 대둔산으로 주역을 배우러 들어갔습니다. 동짓달 엄동설한에 폭설을 뚫고 쌀 서말 들러메고 큰 재를 두 개나 넘어 대둔산으로 야산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소금 반찬에 밥 먹으면서도 배고픈 줄 모르고 주역만 공부했습니다. 점괘 맞추는 재미도 쏠쏠했지요. 그러나 그보다도 우주와 삶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주역에 미쳤습니다.“
그는 그렇게 야산 밑에서 31세 때까지 12년간 주역을 공부했다. 그가 야산으로부터 배운 주역의 특징은 괘에 덧붙여진 문자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괘의 모양을 중심으로 주역을 해석하는 것. 괘를 중시하는 게 주역의 기본이라는 말이다.
이후 31세 때부터는 주역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소신대로 점 집을 차리지는 않았다. 쓸데 없는 점 공부해서 돈도 못 벌고 가족들 고생시킨다고 손가락질도 받았다. 돈 때문에 사람들에게 점을 봐주고픈 욕망도 들었다. 그러나 점 집 대신 그보다 ‘한 급 위’인 한약방을 한 때 운영했다. 이후 40대엔 논산 대전 등지에서 한문과 주역을 강의하면서 생활했다. 하지만 생활은 여전히 궁핍했다.
“젊은 시절, 깊은 산중에서 제대로 먹지도 않고 밤을 새워가면서 주역 공부를 한 탓인지, 그 후유증으로 제 나이 쉰일곱 때 결국 쓰러졌고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그 때 서울에서 몇 명의 젊은이들이 찾아왔습니다. 서울에서 주역을 강의해 달라구요. 용기가 났습니다.”
그는 그렇게 해서 58세되던 1986년부터 서울에서 주역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의 건강이 회복됐고 명성도 얻기 시작했다.
“신비하게도, 마이크만 잡으면 힘이 납디다. 두시간 동안 물 한모금 안 마시고 헛기침 한번 안하고 강의했습니다. 주역의 기가 제게 전해진 겁니다. 태극의 음양엔 분명 기가 있습니다.”
일흔셋의 나이에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카랑카랑했다. 그는 이것을 주역의 기덕분이라고 했다. 그의 강의을 거쳐간 제자는 16년동안 무려 5000여명. “대학총장은 물론이고 박사들이 줄줄이 저한테 배우러 오더군요. 설날엔 세배하러 저의 집에 줄을 섭니다. 16년째 강의를 듣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강생중 점 집을 차린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 김옹은 “내가 평생 정통으로 주역을 배우고도 가만 있는데 몇 개월 배우고 나가 점짐을 차리다니”하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서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하고 넘어간다.
-선생님 자신의 점괘를 보시면 좋은가요, 나쁜가요.
“미래를 알면 뭐해요 죽는 걸. 그렇지만, 운명은 바꿀 수 있습니다. 점을 보고 나쁜 운명이라면 근신하고 대처해서 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의 점괘를 자주 보지는 않습니다. 스스로의 점괘를 보면 나쁜 괘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됩니다. 나쁘게 나와도 좋게 해석하려 합니다. 결국 틀리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주역에서 올바른 예측을 하려면 주역 지식 뿐만 아니라 수양이 필요한 겁니다. 결국 수양입니다.”
-우리 사회를 위해 선생님의 주역 지식을 활용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예를 들면, 우리 사회의 대재난을 예측해 발표하신다는지….
“자꾸 그런데 신경쓰다 보면 점괘가 잘못 나와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 엄청난 재앙이 보인다면 그런 것은 공개적으로 말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6·25 같은 난리는 없을 겁니다.” -야산 선생은 1948년부터 후천(後天)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선 2000년이 대변혁의 시작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무엇이 대변혁의 시작이었다는 건지 궁금합니다.
“꼭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시간을 재는 것인데, 주역을 보통 정도 공부하면 모릅니다. 아주 깊게 공부해야 보이지요. 선천(先天)은 오전이고 봄 여름이고, 양(陽) 동(東) 정신 남자 하늘입니다. 후천은 오후이고 가을 겨울이고, 음(陰) 서(西) 물질 여자 땅이구요. 후천이 되면 물질이 승하고 정신이 쇠합니다.”
-그렇다면 물질이 승한 후천이 되면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습니까.
“그래서 정신문화을 잘 보존해야한다는 거죠. 그런데 후천의 언젠가 물질끼리 서로 충돌해 물질이 파괴되어 버릴 겁니다. 핵전쟁 같은 거죠.”
-핵전쟁이라뇨. 그게 언제인가요.
“말할 수 없습니다. 발설엔 때가 있는 겁니다.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제 나이가 지금 30대 후반인데, 제 생전에 핵전쟁이 납니까.
“그건 아닙니다. 마음 놓으세요.”
<만난사람〓이광표기자>kplee@donga.com
◆김석진옹은;대산 김석진(大山 金碩鎭)옹은 192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6세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비롯해 ‘소학(小學)’ ‘동몽선습(童蒙先習)’ ‘통감(通鑑)’ 등을 배웠다. 15세에 논산의 심상소학교를 졸업한 뒤 다시 할아버지로부터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등 사서를 수학했다. 19세부터 12년 간 야산 이달(也山 李達) 선생 문하에서 ‘주역(周易)’ ‘서경(書經)’ ‘시경(詩經)’을 공부.
31세 때부터 충남 논산에서 한문과 주역 등을 가르쳤고 45세 때부터는 대전에서 한문을 강의했다. 58세에 서울에서 대학과 주역 강의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5년간 서울 대전 청주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후학을 양성해오고 있다. 현재 동방문화진흥회(전 홍역학회) 회장. 저서로는 ‘주역과 세계’‘명(名)과 호송(號頌)’‘대산 주역 강의’‘대산 대학 강의’‘대산 주역 강해’ ‘대산 주역 점해(占解)’‘미래를 여는 주역’‘가정의례와 생활 역학’‘스승의 길, 주역의 길’ 등.